역사지리학, 세계적 지식의 일상화 - 잡지 <소년>에 등장하는 근대지식들
2024/03/03
역사지리학, 세계적 지식의 일상화 - 잡지 <소년>에 등장하는 근대지식들
장응진이 광무정권에 쫓겨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 최남선은 황실의 수혜를 받고 일본으로 떠난다. 최남선은 양반자제 50명을 선발하여 내장원(內藏院)의 재정으로 학자금을 지원한 황실특파유학생 단장이었다. 학부참서관 최헌규의 차남으로 경성학당에 입학한 때가 열세 살이 되던 1902년, 황실특파유학생으로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들어간 것이 1904년이었다. 최린의 회고에 따르면 특파유학생에 대한 대우는 상당히 좋았으나 최남선은 부친의 신병으로 인해 1904년 12월 중퇴하고 1905년 1월 단독 귀국한다.
관비유학생으로 두 번째 유학길에 올라 와세다 전문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06년 9월이다. 하지만 그마저 한 학기만에 자퇴하게 되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의 황제를 화족에 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토론한 모의국회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다시 사비유학생으로 1909년 와세다대학 고등사범과에 입학할 때까지 신문관 설립, <소년> 창간, 유학생회 및 청년학우회 활동 등을 하면서 서울과 동경을 오갔다.
관비유학생으로 두 번째 유학길에 올라 와세다 전문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06년 9월이다. 하지만 그마저 한 학기만에 자퇴하게 되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의 황제를 화족에 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토론한 모의국회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다시 사비유학생으로 1909년 와세다대학 고등사범과에 입학할 때까지 신문관 설립, <소년> 창간, 유학생회 및 청년학우회 활동 등을 하면서 서울과 동경을 오갔다.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의 전신은 1882년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가 정치로부터 학문의 독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