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그 여름, 기다림
2024/10/16
정말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웠다.
지금처럼 에어컨이 집집마다 있어서 여차하면 틀 수 있는 때도 아니었다. 기껏 해봐야 지나가면서 더위 먹은 강아지 마냥 혀를 쭉 빼고 은행 간판이 보이면 달려가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혹은 카페라도 들어가면 집채만 한 에어컨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손님들을 향해서 찬바람을 뿜어주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몇십 년 만의 더위라느니 하면서 조선 시대의 무더위 역사까지 더듬어 올라가 연일 떠들어댔다.
1994년 여름.
설설 끓는 더위만큼이나 내 마음도 팔팔 끓어대고 있던 시절...
나는 하루가 멀다고 크고 작은 스캔들로 폭죽을 터뜨리는 남녀 공학 중학교를 나왔다. 폭죽은 내게도 예외 없이 터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남자애랑 요즘 말로 하면 ‘우리 오늘부터 1일’을 선언하며 사귀기 시작한 것이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1988년 9월 17일.
36년 전 이 날짜를 기억하냐며 놀랄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센스가 있다면 알아챘을 것이다. 이날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였던 ‘88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 날이다.
부모님은 어떻게 운 좋게 티켓을 구하셔서 올림픽을 구경하러 가신다고 새벽 일찍부터 채비해서 나가신 터였다.
빈집. 피 끓는 사춘기 남녀 청춘에게 빈집이란 매혹적인 공간이다.
나는 반장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집으로 올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왔다. 그리고 내 방에서 함께 유재하, 변진섭, 동물원 음악을 들었고, 함께 사과도 깎아 먹었다.
이 시절의 영롱한 연애 수단은 오직 전화와 편지였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라며 전화기 쪽으로 칼 루이스 저리 가라 뛰어갔다.
하루가 다 저무는데도 영 벨이 울리지 않으면 혹시 전화기가 고장 난 것 아닌가 하고 전화선을 살피는 것은 예사. 밤이면 혼자 책상에 앉아 낮에 학교 앞 아트박스 선물 가게에서 사 온 편지지에 일기를 쓰듯 나의 하루를 고백했다. 아니 나의 하루에다가 나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