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과 노비, 서로를 향한 아웅다웅의 역사 (1) 오희문 VS 덕노
2023/03/10
노비란 어떤 존재였을까요? 혹자는 조선을 비판하면서, ‘자국민을 노예로 삼은 미개한 나라’라곤 합니다. 노비가 노예와 같은 존재인지에 대한 논쟁은 학계에서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그런 학술적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노비를 사회의 가장 낮은 신분에 위치하면서 최소한의 인권은 물론, 욕망을 품을 자격조차 박탈당했던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비를 매일 마주하면서 그들을 소유하던 양반의 기록에선 다채로운 노비상이 드러납니다. 양반에게 대드는 노비, 교묘한 꼼수를 부리는 노비, 주인과 법정 다툼을 하는 노비, 사랑의 도피를 떠난 노비, 양반이 쩔쩔매는 노비 등이 등장하죠. 하나하나의 모습을 보면, 과연 생사여탈권을 주인에게 빼앗긴 예속적 존재가 맞는지 의심케 합니다.
앞으로 얼룩소에 올릴 몇 편의 글을 통해, 부자유 속에서 자유를 꿈꿨던 노비들의 삶과 그에 대응하는 양반의 모습을 함께 조명하고자 합니다. 양반과 노비, 절대 대등할 수 없었던 두 계급 간의 숨 막히는 기싸움은 노비, 나아가 조선 사회를 다르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본 연재에 등장하는 사료는 재미를 위해 윤색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이야기는 16세기 선비였던 오희문(吳希文, 1539~1613)과 그의 ‘에이스 노비’ 덕노의 사연입니다. 오희문은 관직을 얻지 못했던 평범한 양반이었는데요. 그저 가문을 운영하면서 살아오던 그가 임진왜란을 맞이하게 되자, 전국을 떠도는 피난민 신세가 됩니다. 그 피난의 세월 동안 써 내려간 일기가 『쇄미록(瑣尾錄)』입니다.
1591년부터 1601년까지 약 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오희문은 24명에서 30명 사이의 노비를 보유했었습니다. 그의 일상생활은 노비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노비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채워진 셈이죠. 조선의 노비는 양반의 집에서 같이 ...
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최성욱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런 이야기가 늘 궁금했습니다. 이것은 좋아요를 안 누를 수가 없네요.
@최성욱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