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과 여성해방의 신호탄, 여성 단발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4/04/17
단발한 여성을 표지 이미지로 내세운 잡지 『신여성』
최초의 단발 여성, 강향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정해진 기간마다 머리를 손질하는 일은 상례에 해당하겠으나, 정도 이상의 머리카락을 갑자기 잘라낸다는 것은 굳은 결심을 드러내거나 어떤 사태에 개입 혹은 단절을 선언하기 위한 방법인 경우가 많다. 목표를 향해 정진한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애달픈 이별을 겪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는 속세를 떠나 세상과 절연하기 위해. 이렇듯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머리카락을 기꺼이 자른다. 물론 이런 행동들은 보통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돼 이뤄지는 일들이다. 

머리를 자르는 행위가 사회적 의미를 크게 지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20년대 여성의 ‘단발(斷髮)’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단발을 한 여성은 강향란으로 알려져 있다. 강향란은 한남권번 기생 출신 여학생으로 1922년 6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나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강향란의 단발 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신문 기사(「단발낭(斷髮娘)」, <동아일보>, 1922년 6월 22일)에 따르면, 강향란의 단발 이유는 ‘실연의 극복’과 ‘새출발’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화학교 학생 시절의 강향란(「학생시대의 강향란」, 『동아일보』, 1922년 6월 24일)
사랑하는 남성에게 버림받은 강향란은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실연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지며 단발을 실행한 셈이다. 단발 이후 강향란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남성 복식을 차려입고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배화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나중에는 상하이와 도쿄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강향란은 단발을 통해 당시 조선에서 가장 대담하고 앞서가는 사회적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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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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