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린 12.12 오늘은 조영래 변호사를 기리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2/12
몇년 전 전두환이 살아 있을 때 12.12를 맞아 정호용 최세창 등 왕년의 졸때기들과 함께 인당 20만원 이상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는 소식이 있었다.  저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하는 시늉은 했을망정 저들을 '패가망신'시키지 못한 것은 한스럽다. 정호용 경우는 1000억대의 자산가로 추정되며 , 허화평도 늘어지게 잘 살고 있다고 전한다. (2023.11.29 시민언론 민들레)  그 외 반란군들도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았다. 일부는 감옥도 갔다지만 길지도 않았고 그들의 부귀 영화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한 탕 치고 몇 년만 썩으면 평생 부자로 산다는 사기꾼들처럼, 저들도 감옥 한 번 갔다 오고 욕 좀 먹으면서도  대대손손 한국의 상류층으로 등극한 셈이다.  <서울의 봄> 따위 히트치든지 말든지.  사람들이 무슨 욕을 하든지 말든지 마세라티 타고 지나가면서 피식 웃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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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런 놈들만 산다면, 그리고 그걸 맥없이 바라보는 사람들만 산다면 그것도 지옥일 게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그 치욕의 12.12, 12월 12일은 변호사의 조영래의 기일이기도 하다. (1990년 12월 12일) 전두환 일당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서 활활 타올라 빛났던 사람.  졸저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 실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일생을 곱씹어 본다. 전두환 일당 같은 건 조영래라는 빛의 배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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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80년대가 저물고 세계사적 격변기라 할 20세기의 마지막 10년, 90년대가 열리던 해 1990년의 12월 중순, 한 변호사의 장례식이 열렸다. 47년 돼지띠이니 나이 마흔 셋. 평범한 개인으로 보아도 요절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의 단명을 안타까워할 나이였지만 영결식장에 몰려들어 눈물바람을 하고 있었던 조객들의 아쉬움과 슬픔은 유독 컸다. 믿기지 않는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를 원망하고 그를 이리 일찍 부른 하늘을 우러러 통탄했다. 세상을 등진 변호사의 이름은 조영래(趙英來)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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