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 엄마는 내게 열쇠를 하나 복사해 달라고 했다.

최지은
최지은 인증된 계정 · 여성과 대중문화에 관해 씁니다.
2023/03/08
엄마와 나는 주로 주차장에서 만난다. 나는 8년 전 결혼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집을 구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집을 구한 사람도 내가 아니라 엄마다. 전세가 싸게 나온 집이 있다며 급하게 전화한 엄마 때문에 일찍 퇴근해 처음으로 둘러본 신혼집 계약은 30분도 안 되어 끝났다. 나는 집을 구하는 문제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화장실 문 뒤의 타일 벽이 깨져있다거나 세면대 수도꼭지가 너무 뻑뻑하다거나 싱크대 수압이 낮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집은 정말로 쌌다. 돈을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밴 엄마다운 안목이었다. 
   
결혼 초, 엄마는 내게 열쇠를 하나 복사해 달라고 했다. 내가 출근해 집에 없을 때 반찬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의 부탁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와 남편은 결혼이 두 사람의 독립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며, 집 역시 사적인 공간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반찬이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조금 서운한 기색을 비쳤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저녁이나 주말에 차를 몰고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왔다. 노란 바탕에 펭귄이나 수달이 그려진 장바구니에 콩자반이나 멸치 조림이 꽉꽉 채워진 반찬 통, 어린애 머리통만 한 콜라비와 비닐 팩에 넣어 얼린 다진 마늘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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