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사와 현대의학의 신화 (3), #2 호흡을 만들어라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11
예전에 적은 메디컬에세이의 원고입니다. 대략 단행본 1권 정도의 분량인데 어쩌다보니 출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제가 적은 메디컬에세이와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새로운 출판사를 구하는 것보다 얼룩소에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주 1-2편 정도 올릴 계획입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1.
침대에 누운 사람의 키는 추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노인은 170cm를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180cm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노인이 젊음을 자랑하던 시절에는 작지 않은 키가 틀림없었으리라. 팔과 다리도 비슷했다. 이제 근육은 죄다 사라졌으나 피부 아래 드러난 뼈는 강건했다. 한때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바다를 누볐고 잡은 생선으로 선창을 가득 채웠으나 이제는 바다에서 쫓겨나 항구 한 켠에 버려진 커다란 어선, 노인의 몸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많이 힘드시죠? 지금 폐렴이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페이스실드, N95마스크, 방역복, 수술장갑으로 구성한 D급 보호구는 C급 보호구와 유사하다. D급 보호구는 N95마스트를 착용하고 C급 보호구는 정화통이 달린 방독면을 착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C급 보호구보다 한 단계 높은 B급 보호구는 전동식 공기호흡기를 사용한다. 따라서 B급 보호구와 C급 보호구를 착용하면 환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다행히 그때는 D급 보호구를 착용한 상황이라 노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나 크게 소리쳐야 했다. N95마스크는 목소리를 작게 만들었고 노인은 청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행할 때, 원칙적으로는 C급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 응급실에는 C급 보호구가 없었고 그렇다고 당장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검사를 확인하는 3-4시간 동안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일단 주무시는 약물을 투여할 거에요. 그래서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아시겠어요? 푹 자고 일어나면 폐렴이 다 나았을 거에요!...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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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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