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스템에서 사태는 어떤 의미일까?
2023/03/01
예전 얼룩소에서도 잠깐 생각해 본 적 있는데, 소셜네트워크나, 언론이나, 미디어나, 콘텐츠나 그 핵심가치로서 사태(avalanche)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태란 눈사태를 말할 때 그 사태다. 눈 덮인 산의 작은 균열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거대한 눈사태를 일으키듯,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메시지들은 사태로서 유의미하게 동작한다는 생각이다.
사태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임계상황이다. 보통 물리학에서 임계점이라고 하면 서로 다른 물리적 성질을 갖는 두 상(phase)이 불연속적이 맞닿은 지점을 말하는데, 이 지점에서는 아주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거시적인 영향으로 이어지는 사태들이 발생한다. 물을 끓이면 막 속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생기듯, 아주 작은 요동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를 임계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회 시스템은 스스로 이런 임계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얘기가 있다. 물은 열을 가해야 기체로 변하는 임계점에 도달하는데, 사회 시스템은 냅두면 끓는 점으로 내몰린다는 비유다.맞는 말 같다. 이를 자기조직화된 임계성이라고 하는데, 사회 시스템에서 도대체 왜 이런일이 일어날...
사태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임계상황이다. 보통 물리학에서 임계점이라고 하면 서로 다른 물리적 성질을 갖는 두 상(phase)이 불연속적이 맞닿은 지점을 말하는데, 이 지점에서는 아주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거시적인 영향으로 이어지는 사태들이 발생한다. 물을 끓이면 막 속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생기듯, 아주 작은 요동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를 임계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회 시스템은 스스로 이런 임계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얘기가 있다. 물은 열을 가해야 기체로 변하는 임계점에 도달하는데, 사회 시스템은 냅두면 끓는 점으로 내몰린다는 비유다.
@홈은님,
자본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킹의 중심성을 중심으로 사태가 일어난다는 말씀에, 우리가 그래서 자본과 공인에게 도덕을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해야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참 이상적인데, 아직 그럴 수 있는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Fred님,
임계 상황이라는 것이 단순한 안정적인 상태라기 보다는, 계속해서 축적하는 에너지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불안정해지는 계의 상태가 맞물리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닿은 두 힘이 맞물리는 지점이니 임계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태'는 가시화된 비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phase 변화가 잦은, 즉 사태가 빈번한 사회는 피로한 사회, 자극적인 사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금세 에너지가 축적되는 과열/성장 사회 라던지, 금방 불안해지는 불안정 사회라던지... 그런 원인 들이 빈번한 사태의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그러더라고요.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 더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이 안 걸려서... 에이즈 관련 연구가 활발한 이유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걸려서...
일이 벌어져야 바라보고 고치기 시작하는 것이 인류의 습성(?) 이라면 우린 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을듯요.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는 하지 못한다보다는 안 한다가 더 맞겠다 싶어용.
사회 시스템의 phase 변화가 잦으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오히려 그런 코스트 때문에 점진적 변화가 없고 끝까지 억누르다가 터져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군요 ㅎㅎ 무질서를 effective temperature가 높은 상태로 정의해야할까요? 아니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로 정의내려야 할까요? 사회적 개념의 질서/무질서와 통계물리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 지 고민이 되네요. 말씀하신대로 soc는 state보다는 criticality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거니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적었겠네요.
흠.. 그런 것 같습니다.
SOC 자체는 phase 자체 보다는 임계점에 내몰리며 발생하는 burst에 주목하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burst 현상 그 자체의 속성만 보면 주로 쌓임과 무너짐, 막힘과 뚫림 같은 거시적인 질서 상태와 무질서 상태에 관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몬스님께서 정의하시는 사회의 두 phase는 질서와 무질서일까요?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도태를 접하는 관점이 시스템 전체의 관점이 아닌 행위자로써의 관점이 더 강한 것이 수동적인 의미를 부각시켰나 봅니다. 나 자신의 관점을 시스템 측면에서 확장시킬 수 있거나, 혹은 그런 환경 조건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도태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또 도모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 '태'라는 한자가 흥미롭습니다. 도태 (淘汰/陶汰)라는 말이 대표적인데, 사실 도태라고 하면 '낙오'와 '열외'를 떠올리는 피동적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태의 실제 의미는 능동적인 말이더군요.
1
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림.
2
여럿 중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앰.
'자연도태'라는 것도 자연과 섭리가 흔들어 걸러 낸 결과인데, 단어가 다소 왜곡되어 누락되어 소멸하는 것에 뉘앙스 촛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자몽님, 정말 쉽고 간결하게 요약해 주셔서 원글이 무색해 지는 댓글입니다..ㅎㅎ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보면 미미해 보일지라도, 임계현상의 관점에서 보면 연쇄를 일으키는 사태의 재료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그런 폭발적인 일들이 사회 시스템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다가 써본 글이에요.
보통은 그런 가치의 '명'보다 '암'이 더 많아 피로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 가치야 말로 핵심가치가 아닐까. 그런 망상을 좀 해봤습니다..ㅎ
익숙치 않은 글 굳이 몇 번을 읽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청자몽님, 정말 쉽고 간결하게 요약해 주셔서 원글이 무색해 지는 댓글입니다..ㅎㅎ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보면 미미해 보일지라도, 임계현상의 관점에서 보면 연쇄를 일으키는 사태의 재료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그런 폭발적인 일들이 사회 시스템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다가 써본 글이에요.
보통은 그런 가치의 '명'보다 '암'이 더 많아 피로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 가치야 말로 핵심가치가 아닐까. 그런 망상을 좀 해봤습니다..ㅎ
익숙치 않은 글 굳이 몇 번을 읽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태의 태자가 흔들어 걷어내다라는 뜻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우르르 무너지는 형상에서 '흔들어 걸러낸다'를 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같은 사태더라도 누군가는 쇄도하는 연쇄반응을, 누군가는 흔들어 걸러지는 과정을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임계현상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야말로 댓글 남겨주셔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아까 낮에 곁눈질로 보고, 2번 더 보았습니다. 뭐라고.. 흠 댓글을 달고 싶은데, 가볍게 달 글은 아닌지라. 밑에 스테파노님 댓글을 보니 더더욱.. 뭔가 더 깊이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
제가 이해한 바로는, 나중에 뻥.. 하고 터져버린 큰 사건도, 실은 작고 작은 여러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터져버리는 것이다. 비록 소소해보일지라도, 무시하지 말고
잘 지켜보고, 변화와 흐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는 내용인거 같은데, 맞는지요 ^^?
...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생각해봄직한 글을 읽어볼 수 있는 것도 이곳의 매력인거 같아요.
몬스님도, 밑에 @박 스테파노 님도
평안한 삼일절 밤 되세요.
"사태'란 말이 계속 머리에 남습니다. 沙汰/砂汰라는 한자에서 시작해 事汰라는 말까지 이어지니까요. 이 때의 "태"자가 '일 태'인데 '흔들어서 걸러낸다'라는 의미가 있지요. 결국 "어떠한 일을 흔들어 걸러내는 과정"을 '사태'라고 한다면, 분명 말씀하신 임계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와 닿습니다.
임계라는 말이 여러 의미도 있겠지만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정한 비율로 계속되고 있는 정상상태'라는 의미가 가장 제게는 유의미해 보입니다. 임계가라는 것이 무언가 경계에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중성자와 흡수·누설로 없어지는 중성자가 평형을 이루어 연쇄반응이 지속되는 상태로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지금의 일들이 흔들어 걸어 내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그 임계와 사태를 희망해 봅니다.
덕분에 생각이 깊어졌네요. 감사합니다.
어떤 과학자가 그러더라고요.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 더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이 안 걸려서... 에이즈 관련 연구가 활발한 이유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걸려서...
일이 벌어져야 바라보고 고치기 시작하는 것이 인류의 습성(?) 이라면 우린 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을듯요.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는 하지 못한다보다는 안 한다가 더 맞겠다 싶어용.
사회 시스템의 phase 변화가 잦으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오히려 그런 코스트 때문에 점진적 변화가 없고 끝까지 억누르다가 터져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군요 ㅎㅎ 무질서를 effective temperature가 높은 상태로 정의해야할까요? 아니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로 정의내려야 할까요? 사회적 개념의 질서/무질서와 통계물리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 지 고민이 되네요. 말씀하신대로 soc는 state보다는 criticality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거니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적었겠네요.
몬스님께서 정의하시는 사회의 두 phase는 질서와 무질서일까요?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도태를 접하는 관점이 시스템 전체의 관점이 아닌 행위자로써의 관점이 더 강한 것이 수동적인 의미를 부각시켰나 봅니다. 나 자신의 관점을 시스템 측면에서 확장시킬 수 있거나, 혹은 그런 환경 조건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도태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또 도모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 '태'라는 한자가 흥미롭습니다. 도태 (淘汰/陶汰)라는 말이 대표적인데, 사실 도태라고 하면 '낙오'와 '열외'를 떠올리는 피동적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태의 실제 의미는 능동적인 말이더군요.
1
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림.
2
여럿 중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앰.
'자연도태'라는 것도 자연과 섭리가 흔들어 걸러 낸 결과인데, 단어가 다소 왜곡되어 누락되어 소멸하는 것에 뉘앙스 촛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