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보류

T
Typebeing · 마음가는대로 무엇이든, Fiction
2023/11/08
-책을 꼭 내셔야겠어요?
1인 출판사 사장은 자비 출간을 의뢰하러 온 그녀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그녀는 당황했다.
사전에 이미 여러 번의 메일과 통화로 모든 사항이 정리됐음에도 만나자마자 대뜸 이런 말부터 꺼낸다는 건 어쨌든 일을 맡기겠다는 고객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마치 '그런 글들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어놓을 가치가 있을까요?'라는 식으로 들려 그녀는 불쾌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형편없나요?
-아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자칫, 영원히... 그러니까 죽기 전까지 후회하실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녀는 좀 참기가 힘들었다.
-제 돈으로 제 책을 낸다는데 뭘 후회한다는 거죠?
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인터넷 장의사 아시죠?
-그럼요. 나온 지가 언젠데...
-그럼 뭐가 됐든 온라인 곳곳에 쓰셨던 글들은 어디를 통하더라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아시겠네요?
그녀는 자제의 단추 하나를 툭, 풀고 약간 날을 세웠다.
-지금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사장이 그녀가 사 들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온라인상의 것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 책이란 게 말이죠 한 번 세상에 내보내면 다시 거둬들일 수가 없어요. 뭐 그만큼 팔리지도 않겠지만...
그녀의 표정을 본 사장이 얼른 덧붙였다.
-아 거의 모든 책들 말입니다. 갈수록 출판시장이 그렇잖아요? 이걸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난달에 의뢰받아서 낸 책이 오늘 인터넷 문고 한 군데에서 베스트 셀러 1위에 올랐더군요. 스물 다섯 권이 판매됐는데 책 내용이나 수준으로 봐선 본인이 산 건지 지인들 주문인지는 뭐 제가 알 필요도 없고... 어쨌든 데일리 베스트는 맞죠. 
-실례지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죠? 일을 못 하시겠다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저도 이걸로 먹고사는 처진데 그럴 리가 있나요? 게다가 작... 고객님께서는 선주문 후제작이라 주문 안 들어오면 그걸로 끝도 아니고 요즘 같은 때 100부씩이나 찍으시겠다는데 제가 왜 그러겠어요?
-혹시 조건을 바꾸시려는...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여기 게시된 이야기는 허구이며 픽션입니다. 혹시 만에 하나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42
팔로워 43
팔로잉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