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전두광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나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2/04
▲ 서울의 봄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 현대사를 10년쯤 뒤처지게 만든 비극이 있다. 민주화라는 국민적 바람을 군홧발로 짓밟고서 광주의 아까운 생명을 총칼로 찢어발긴 신군부의 등장이다. 우리는 이를 12.12 군사반란이라 말한다.

때는 바야흐로 1979년, 1970년대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서울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의 바람이 일었다. 오랜 독재가 막을 내리며 바야흐로 새 세상이 열리는가 기대가 피어났다. 언로를 막고 민의를 탄압하며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온 길고 긴 군부독재가 마침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혹은 그보다 천박하고 악랄한 이가 집권하여 군대가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서울에 불었던 훈풍은 그렇게 무참히 멈추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12.12 군사반란
▲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서울의 봄>은 그 비극의 서막을 썼다. 12.12 군사반란 당일,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군인들과 이들의 반란을 저지하려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실제 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었다고 밝히고, 전두환은 전두광으로 노태우는 노태건으로 바꾸었으나 영화를 보는 누구도 이것이 그저 꾸며낸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화다. 1979년 독재자 박정희의 암살과 함께 선포된 계엄은 정보와 수사권을 틀어쥔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막대한 권력을 안겼다. 계엄 뒤 합동수사본부장이란 중책을 맡은 그는 정권 붕괴로 무력화된 중앙정보부는 물론이고, 검찰과 경찰까지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그는 군을 넘어 현실 정치에까지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통령의 암살로부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하라고 쥐어준 권한을 사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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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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