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복자에게
김금희의 소설집을 처음 본 게 겨우 열세 달 전이다. 그때 반월이라는 소설을 보고 생각했다. 이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소설 속에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선글라스 쓰고 섬을 누비며 우는 주인공을 보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이후 나는 무수히 많은 편지를 써 보내거나 보내지 않았다. 눈병에 걸려 저절로 누런 눈물이 줄줄 흐르고 햇볕에 눈이 시어서 선글라스를 샀다. 정작 선글라스를 벗을 무렵 울 일이 많았는데, 렌즈에 소금물이 묻은 채 굳으면 닦아내기 영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예약 구매를 해 놓고 한참 만에 받았다. 책 표지 뒷날개에 소개된 김금희의 책을 일 년 간 다 봤다.
책 앞머리를 읽을 때, 얇게 썬 동치미 한 조각 씹어 먹는 것 마냥 속이 시원했다. 아이참, 이제 나는 단문병에 걸렸나 봐. 물론 내내 단문은 아니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생각도 기억도 많아지고 문장도 길어진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 결코 쉽게 쓰이지 않는 걸 안다. 쉽지 않은 겨울과 봄과 여름을 보내며 그럼에도 쉬지 않고 쓰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몰래 구경하러 가곤 했다. 뭔가 이렇게 쉽게 받아 읽어도 되나 싶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자인 이영초롱은 어린 시절 고모가 의사로 일하는 고고리섬과 제주 본섬에서 몇 년 간을 보냈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할망신에게 인사하며 해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복자와 친해졌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 얼굴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 아이들과 멀어진 이유나 과정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영초롱은 복자와 멀어진 일을 뚜렷이 알고 있다. 이선고모 집에 임공이 자주 온다는 걸 감춰달라는 복자의 부탁을 어기고 영초롱은 어른들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속이 상한 복자는 영초롱이 고모가 이규정에게 쓴 편지를 훔쳐봤다고 고모에게 이른다. 써놓고 봐도, 저들이 돌아볼 때도 정말 그게 별일이었나, 싶었을 일이다. 그러나 어떤 관계들은 작은 어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