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나라의 난임 병원 졸업생 12] '카페 쟁반 공포증' 인간의 사랑

정민경
정민경 · 잡문 쓰는 사람.
2024/04/22
1. 카페에서 음료가 가득 든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올라갈 때.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나는 쟁반을 떨어뜨려 모든 컵이 와장창 깨지는 상상을 한다.

이것들을 다 깨면 나는 어떤 식으로 변상을 하고, 어떤 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뒷수습을 할지까지 상상은 뻗어나간다. 카페에 가면 대걸레의 위치를 체크해보기도 한다. 단 한 번도 카페에서 컵을 깬 적도 없지만 2층이 있는 카페에 갈 때마다 똑같은 상상은 되풀이된다.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 이 엘리베이터에 만약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타고 있다면? 최근 칼부림 같은 듣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뉴스가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된다. 답 없는 상황을 상상하고 혼자 기가 빨려 피곤해한다.

한강을 산책 겸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나를 밀친다면? 수영을 잘 못하는 나는 한강에 떨어지면 죽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면 일단 앉아야지. 그러면 나를 들지는 못하겠지? 지금 나는 엄청 무거우니깐. 그리고 만약 떨어지면 저기 보트가 하나 있으니깐 힘이 빠지기 전에 소리를 지르면서 SOS를 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 상상은 '아 빨리 수영을 배워야 돼!!‘라는 계획을 짜면서 마무리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고 남편에게 말하면 '도대체 왜 그런 상상을 해서 에너지를 낭비하니?'라고 말할 뿐이다. 그럼 나는 "이상한 상상이라도 해두면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덜 당황하고 대처할 수 있잖아. 그리고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으니깐 결국 생산적인 거 아니야?"라고 대꾸한다. 
커피와 빵들이 담긴 쟁반을 무사히 자리에 놓아두면 그때 밀려오는 안정감...
2. 이상한 상상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싶지만 사실 내 마음속으로도 이런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 '시크릿'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은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괜히 내가 맨날 재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서 그런 재수 없는 기운이 나한테 붙을까 봐 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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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콘텐츠 이야기 쓰는 기자. 휴직 중 에세이를 쓰고 있다. 무언갈 읽고 있는 상태가 가장 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이메일 min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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