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왼손잡이도 AB형도 아니지만> : 여성과 남성,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을 위하여 by 카라타치 하지메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2

나는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성과 남성성 측면에서 바라보면 '중성'에 가깝다. 20대 중반까지 파운데이션 21호, 23호가 용량을 표기한 숫자인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은 석 달에 한 번 숏 단발로 잘라서 관리하고 있으며 펌이나 염색은 일절 하지 않는다.  하이힐 보다 로퍼나 운동화를 더 좋아하고 스커트 보다 바지를 즐겨 입는다. 건강을 위해 몸무게 60kg을 유지할 뿐, 48kg에 대한 강박은 버린 지 오래다. 운동 종목도 필라테스나 요가는 좀체 끌리지 않고, 검은색 도복을 입고 죽도를 휘두르는 검도에 큰 매력을 느낀다.

날씨가 더워지면 몸에 살짝 달라붙는 원피스를 꺼내 입고 샌들을 맞춰 신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귀걸이를 자주 착용하지만 팔찌, 반지,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워서 싫다. 꽃이란 꽃은 다 좋아한다. 예쁜 공책과 메모지, 포스트잇, 캐릭터 볼펜은 충동구매로 이어질 때가 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에는 무관심하다. 눈대중으로 대충 양념해도 평타 이상의 맛을 자아낼 만큼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나 평생 가정주부로 살 마음은 없다. 아기들만 보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추리 소설도 재밌지만 로맨스 소설은 더 재밌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겨우 떠올릴 법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도 여성성과 남성성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인형 놀이는 좋아했지만 소꿉놀이는 질색했다. 계절이 바뀌면 뒷산으로 곤충 채집을 다니느라 종아리에 풀독이 오르기 일쑤였고, 벌레 잡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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