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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나더러 ‘진보의 아이콘’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여졌는지 그 기원은 모른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나는 한때 지금은 없어진 <아웃사이더>란 진보 성향의 잡지 편집장을 했었다. 이 잡지의 모토가 ‘일상의 진보, 약자와 동행’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친구들이 나에게 ‘진보’보다 더 진한 색깔을 씌워 ‘좌파’로 보았을 개연성이 높다.
물론 기억은 안 나지만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자기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피력했을 테고, 그 강도도 나름 셌을 것으로 짐작되는 바, 친구들의 이 같은 평가는 무리가 아니리라.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아직 진보주의자, 나아가 좌파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 정체성은 아직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게 맞다. 왜?
나는 여전히 내 배부르고 내 등 따신 걸 좋아한다. 또 내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데 인색하다 못해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나와 내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기심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필부이다. 진보는 ‘이타심’에서 시작한다는 데, 이걸 보고도 당신들은 나를 ‘진보’란 낱말로 수식하려 하는가.
나의 출신 배경은 더더욱 이 같은 수식어가 천부당만부당함을 보여준다.
나는 한 자리에서 수백 년 이어온 유교 가문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2학년까지 할아버지에게서 서당교육을 받으며 <천자문> 등을 익혔다. 공부만이 최고임을 강제하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남들처럼 돌을 던지기는 했어도 목숨 걸고 ‘투쟁’하지는 않은 영혼 없는 대학생이었다. 나라가 주인인, 또 재벌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