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과 미니스커트 – 김추자와 윤복희
2022/11/18
김추자, 1970년대 전복과 파격의 아이콘
1971년 1월 27일 신민당 김대중 총재 집에 불이 났다. 폭발물에 의한 방화로 일어난 화재였다. 유신정권 당시 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야당 지도자에 대한 ‘테러’로 의심받았다. 정국은 급격히 경색됐다. 임시국회 소집도 요구됐다. ‘야당탄압’과 ‘군사독재 폭거’ 같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될 찰나, 한 소년이 범인으로 붙잡혔다.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소년은 다름 아닌 김대중 총재의 조카였다. 검찰 조서에 따르면 화재 당시 폭발음에 관해서 ‘김군’은 보일러가 터진 것이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김군이 화약 놀이를 하다 실화(失火)로 인해 발생한 화재였다. 황당한 것은 발화 직후 왜 급히 불을 끄지 않았는지 물음에 대한 소년의 답변이었다. “TV에서 김추자가 나와 노래를 부를 때였어요. 그거 보느라고......” 이는 훗날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의한 거짓 자백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1970년대 김추자가 어떤 가수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김추자(金秋子, 1951 ~ )를 과연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1960~7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담겨있는 『쇼쇼쇼-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생각의나무, 2004)의 저자 이성욱은 김추자를 “한국의 마돈나”라 칭한다. 이 책은 ‘김추자’와 ‘마돈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세밀하게 구분해 설명한다. 김추자와 마돈나는 당대의 뛰어난 여성가수이자 공히 ‘섹스어필’의 상징과도 같은 연예인이다.
이 둘은 남성중심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퇴행적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다만, “마돈나는 자신의 캐릭터를 사회적 담론의 의제로 설정하고 논쟁거리를 생산해 내는 데 까지 이르렀지만, 김추자는 담론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사회적 의제로 전환되려는 순간 행위를 중지한다.” 당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추자는 특유의 음색, 제스처, 춤, 무대매너 등을 통해 평준화-일반화-관습화되고 있던 한국 대중문화의 문법을 전복한 파열의 지점 그 자체였다.”
이렇듯 김추자는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가 선뵐 수 있었던 최대치의 파격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청량하다 못해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호쾌한 발성’과 ‘출중한 가창력’을 자랑한다. 스무 살에 당대의 최고 작곡가 신중현을 제 발로 찾아가 단박에 가수로 데뷔할 정도로 타고난 끼가 대단했다. 신중현의 회고에 따르면 김추자를 처음 봤을 때, 너무나 놀라 마음 속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이름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남성우월주의였던 시대에 거침없이 활약한 여성가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김추자와 윤복희
시대와 정권에 굴하지 않았던 진정한 예술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
글의 통찰력과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자칫 가십거리로만 기억에 남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금 짚어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작가님 글 항상 즐겁게 보고 매우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편견을 넘어서 삶의 한자취가 된것 같아서 그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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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와 윤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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