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시선] 상처를 직시하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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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9
[문학 속 한 장면] 토니 모리슨 作, <빌러비드>

<빌러비드>는 자신의 딸을 죽인 흑인 노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를 다른 말로 바꿔보자. <빌러비드>는 한 어머니가 자기 손으로 자식을 죽인 이야기이다. ‘흑인 노예’라는 말을 ‘어머니’로 바꿨을 뿐인데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 인식에 어머니라는 정체성보다 흑인 노예라는 정체성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흑인 노예 소설’이라고 하면 우리는 백인 노예주들의 가혹한 폭력과 잔인함을, 그로 인해 흑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수난과 참상을 당연하다는 듯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노예제 아래 흑인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상황과 마음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실제 인물 마거릿 가너에 대한 기록을 참조하면 이렇다. 기록에 따르면 가너는 한 아이를 죽인 후 칼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제압당했는데 나머지 세 자녀도 죽이려고 위해를 가한 상태였으며, 잡힌 후에는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로 자식들이 노예로 끌려가 자기처럼 살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빌러비드>에서 세서의 마음도 이와 동일하다. 자식들에겐 자신과 같은 노예의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것.

같은 흑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주장, 선언

소설 속에서도 묘사되듯, 주인에게 동물(또는 재산) 취급을 받고 강간당하고, 낳은 아이를 빼앗기는 게 이 시기 여성 흑인 노예들의 삶이었음을 생각하면, 마거릿 가너와 세서의 행위는 우리도 인간이라는 선언이고 주장일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숭고하고도 선구적인 선언.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이뤄진 누군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미래의 시점에서 ‘이해가 간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무심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힘든 일 앞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은 태도가 아닐까.

‘빌러비드(Beloved)’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존재를 자기 손으로 죽인 엄마에게는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빌러비드>는 모두 3부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인 1부가 세서와 폴 디, 두 주요 인물의 상처와 고통을 더듬어가는, 즉 인물의 기억과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가는 파트라면, 후반부인 2, 3부에서는 수평적 확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건 이후 세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서서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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