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잡설

교실밖
교실밖 · 읽고 쓰고 걷는 사람
2024/04/04
원두커피를 마시면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하는 몹쓸 체질이다. 어떨 때는 한 모금만 마셔도 바로 속 쓰림이 올라온다. 현대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저주받은 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생 믹스커피를 마셨다. 하루 두 잔씩 마셨으므로 대략 30년을 마셨다고 하면 지금까지 2만 잔 이상 마셨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도 문제지만 함께 들어가 있는 설탕이나 프림 등의 첨가물로 인해 카페인보다 더 나쁜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 믹스커피 두 잔 정도는 매 몸이 견딜 수 있는 양이었다.

커피 애호가들은 이런 내게 연민을 느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커피를 즐기는 분들에게 믹스커피란 고급문화를 일거에 퇴색시키는 폭력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사무실에 커피를 내리는 기계를 들여놓고 고급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 먹던(이 경우 내려 먹는다는 것은 믹서에 오렌지를 갈아먹는 것만큼이나 품위 없는 표현일지도) 이가 있었다. 그 사무실에 가면 꼭 커피를 내려 주면서 설명을 곁들였는데, 나는 "그거 말고 믹스커피나 한찬 주쇼!" 이런 꼴이니 그분 생각에 나는 참으로 품격을 말아먹는 사람이었겠지.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지금 선배님이 마시는 믹스커피는 커피를 다 분류하고 남은 가장 저질의 커피를 볶아서 물에 녹기 쉽게 인스턴트 화한 것에다가 설탕과 프림을 얹은 것으로 마실 수록 몸에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속에는 얼마간의 경멸과 걱정이 함께 들어있었을 것이다. "나도 우아하게 원두커피 마시고 싶다고. 그런데 몸에서 받지 않는 것을 어쩌나..." 이렇게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교육을 고민한다. 몇 권의 책을 썼다.
46
팔로워 48
팔로잉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