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4/07

 어느 날, 우리 집에 시조카가 놀러왔다. 30평도 더 되는 창고에 주차된 차 '4033'을 보고 '외삼촌네 차가 있으니 이제 대한민국에 차 없는 사람은 없겠네' 하고 농담했다.
   
"요즘 차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차 갖고 오셨죠?" "주차권 필요하시죠?"
   
요즘이 아니라도 언제부턴가 어떤 모임 등에 가거나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듣는 말이었다. 멀리서 놀러 온 친구를 마중하러 갔을 때, 남편이나 내가 운전하는 걸 본 지인들은 말했다.
   
"오~ 형이 이렇게 운전하는 차를 타 보는 날도 있다니!"
"세상이 변하긴 했네~"
   
결혼하고 20년 넘도록 자동차 없이 살아왔던 우리에게 차가 있어야 될 사정이 생겼다. 경기도 구리에서 살고 있을 때 이천의 농가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남편은 일주일에 서너 번 서울을 가야 했기에 터미널에서 내려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걷기에는 무리였다. 그것도 늦은 밤에.

 *  
이미 면허가 있는 남편은 연수를 받기로 하고 나는 운전학원을 알아보았다. 학원접수가 끝나자마자 순서를 기다려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오십 생애 처음 운전이란 걸 하는 순간이었다. 시속 20킬로로 움직이는 연습차 안에서 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운전은 피할 수 없었기에 큰 압박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계에 흥미가 있거나 속도를 즐기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내겐 전혀 없었다. 기계치에 방향 감각도 둔하다. 코스돌기 세 번째 만에 겨우 통과하고 도로주행 한 번으로 합격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98년식 아반떼 중고 4033'을 만났다. 검은 빛깔이 도는 진한 카키색이었다.

*
앞뒤좌우를 살펴봐도 차 없는 집은 우리뿐이었다. 굳이 차를 구입해서 기동력 있게 움직일 만한 생활이 아니기도 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는 돈이 없었다. 차 한 대를 굴리며 남편의 시간강사로 생계를 이어야 했던 형편에서 그 비용은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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