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하이틴 소설류나 만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상상 중 '시험이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가 있죠.

시험이 없는 세상...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까요?

시험이 없는 세상은 개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과거제도가 등장하기 이전 관리 선발은 천거제였죠. 
지역 유력인사 또는 관리가 누가 효행이 지극하더라 누가 똑똑하다고 하더라 식으로 추천을 올려서 인재를 선발하는 식입니다. 
당연히 지역 유력 가문끼리 서로 추천해주는 식이 되었죠.

예를 들어 효렴이란게 있었는데...부모 묘 옆에 초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뭐 이런식.
과연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서민들이 3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부모 묘를 지킬 수 있을까요?
3년 상이야 말로 자산 계급의 상징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시험이란게 있기 때문에 재산도, 인맥도 별 볼일 없는 개천 출신이 금수저, 은수저 애들한테 한 번 비벼볼 수가 있는겁니다.

조선 개국의 주역 삼봉 정도전도 고려 사회의 주도층인 부유한 귀족 출신이 아니라 
부친 때에서야 겨우 개경에 입성한 산골 향리 가문 출신이었고요. 
그의 라이벌 정몽주 역시 그렇습니다.
여말선초의 주역이 되는 신진사대부들이 대부분 고만고만한 중소 지주 출신. 
그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올라 역사의 무대에 설 수 있었죠.

존 B. 던컨은 <조선 왕조의 기원>에서 고려 귀족 가문이 그대로 조선 양반 가문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으나 
그는 같은 본관이면 같은 집안으로 분류하여 연구의 정밀도가 떨어지죠. 

미야자마 히로시의 <양반>을 보면 
안동 어느 面에서 유명한 벼슬아치를 조상으로 가진 집안이 제사를 지내고 족보를 편찬하며 양반을 자처할 때
邑에 있는 같은 성씨의 향리들도 거슬로 올라가면 먼 친척뻘이라며 그 가문에 편입하는 식으로 가문이 확장되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본관은 고려 때,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 때 형성된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