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4
김성수 감독의 화제작 ‘서울의 봄’을 두고 일부 저널로부터 자칫 전두환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비평적으로 헛웃음이 나온다. 영화를 안보고 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절.대.로. 전두환을 미화할 수 없다. “그분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따위의 얘기는 나올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 전두환은 역사의 범죄자임을 그야 말로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헌병감) 정병주(특전사령관)같은 진짜 군인이 우리에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1979년 12월 12일에 인생의 중요 지점으로 경과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다 잊었던 인물이다. 하물며 새로운 세대 관객들은 다들 처음 듣거나 보는 인물들일 것이다. 영화가 다소 과장을 했다 한들, 이들은 영웅이다.
악인 대 영웅의 서사(敍事)로 이야기의 판을 짠 것은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특히 장태완을 정우성 같은 미남 배우로 캐릭터라이징한 것은 더욱 그렇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제 우리 역사에 군부 쿠데타는 불가능하다는 것, 역사가 그렇게까지 반동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전두환을 ‘고무 찬양’하는 자가 있다면 그 이름은 일베이다. 극우 파시스트이다.
놀랍게도 12.12는 지금껏 한번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종종 ‘제5 공화국’같은 드라마에서 언급되곤 했다. 10.26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비교적 심심찮게 영화적으로 거론된 것과 비교하면 의외의 일이다. 아마도 그건 12일에서 13일로 넘어 가는 단 10시간의 기록이 그동안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던 측면을 반영할 것이다. 이는 곧 그때 그 사건의 주모자들=반역자들이 오랜 동안 권력을 잡았거나 권좌에서 내려 온 후에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이다.
쿠데타의 후유증은 기본으로 반세기가 간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의 반란과 학살은 60년이 넘는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하물며 12.12는 이제야 40년이다. 아직 정리될 것이 많다. 그래서 지금부터이다. ‘서울의 봄’이 물꼬를 틀 것이다. 악랄했던 전두환의 본색을 거듭해서 밝혀 내고 노태우와 정호용, 황영시와 차규헌 그리고 박세직, 허화평과 허삼수, 이학봉, 장세동, 박준병, 박희도, 최세창 등 반란의 주도자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모두들 장차관을 ‘해먹고’ 모든 권력을 ‘지들끼리’ 나눠 가졌다. 세상과 언론이 방심하고 왜곡해도 영화는 줄기차게 이들의 만행을 기록하고 재생시킬 것이다.
‘서울의 봄’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관객들의 갈증이 턱에 닿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제(1년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면 이때쯤은) 영화가 세상과 정치, 그리고 역사에 대해 정면으로 발언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들 꾹꾹 눌러 가며 숨을 죽여 왔고 그나마 정지영 감독이 ‘소년들’로 모두(冒頭) 발언을 시작했지만 대중적으로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쨌든 그런 발언의 시작이 ‘서울의 봄’으로 모여 강한 휘발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 영화 ‘서울의 봄’은 선악의 이분법이 강하고 12월 12일에 벌어진 실제 사건이 아무리 복잡한들 김성수 감독이 정리를 워낙 잘해 놔서인지 이야기를 잘 따라갈 수 있다는 점, 오랜만에 파워풀한 영화를 만났다는 점, 그리하여 재미가 극에 달한다는 점, 배우들 모두 투혼 연기를 보인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떠나 이 영화에는 진정성이 뚝뚝 흐른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향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고, 무엇을 얘기하려 하는 지가 정확하다. 그 점이 대중들의 가슴에 꽂히고 있을 것이다. 특히 배우들이 이런 역사적 영화라면 단 한 컷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열연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무리 진정성,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들이 2•30대들에게 ‘구리다’는 핀잔을 듣는 시대라 할지라도 우직한 진심은 늘 통하는 법이다. ‘서울의 봄’의 성공요인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다시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정말 애썼을 영화,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 작은 역할에도 열연을 마다않는 큰 배우가 있는 영화,
영화는 잘 봤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가슴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