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3
1년이 흐르고 나서야 글을 봤습니다. 민수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글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주셨습니다.
제가 '이성적 사실'이라 표현한 것을 두고 우리가 이렇게 떠드는 순간 그것은 '정치적 사실'이 되어버립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사상가가 1968년에 발표한 「진리와 정치(Truth and Politics)」라는 짧은 논문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철학적 진리는, 시중에 들어서는 순간, 그 본성을 바꾸고 의견이 된다." 이 현상에는 정치의 독특한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서로의 속을 알 수 없고 겉으로만 마주한 복수의 인간은 아무리 진리를 이야기하더라도 입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글에서는 이성적 사실과 정치적 사실이라는 간단한 이분법으로 변주를 했습니다만, 아렌트는 진리(truth, ἀλήθεια), 의견(opinion, δόξα), 사실(fact), 진실(truthfulness), 수학적 진리(mathematical truth), 이성적 진리(rational truth), 철학적 진리(philosophical truth),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를 세세하게 구분합니다. 철학 수업시간이 아니니 각각의 개념에 대해 논하는 건...
제가 '이성적 사실'이라 표현한 것을 두고 우리가 이렇게 떠드는 순간 그것은 '정치적 사실'이 되어버립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사상가가 1968년에 발표한 「진리와 정치(Truth and Politics)」라는 짧은 논문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철학적 진리는, 시중에 들어서는 순간, 그 본성을 바꾸고 의견이 된다." 이 현상에는 정치의 독특한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서로의 속을 알 수 없고 겉으로만 마주한 복수의 인간은 아무리 진리를 이야기하더라도 입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글에서는 이성적 사실과 정치적 사실이라는 간단한 이분법으로 변주를 했습니다만, 아렌트는 진리(truth, ἀλήθεια), 의견(opinion, δόξα), 사실(fact), 진실(truthfulness), 수학적 진리(mathematical truth), 이성적 진리(rational truth), 철학적 진리(philosophical truth),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를 세세하게 구분합니다. 철학 수업시간이 아니니 각각의 개념에 대해 논하는 건...
소중한 의견 고맙습니다... 많은걸 배우고 갑니다!
첫 질문부터 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자연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말이 성립할까요? 자연이 무엇일까요? 자연은 인위의 반대입니다. 자연법칙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에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런데 자연의 흐름에서 모종의 법칙을 도출하는 것 자체가 인위입니다. 인과율은 상상의 산물이니까요. 자연법칙을 연구한 결과로 도출된 것이 자연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결코 진리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자연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순간 자연은 그 모습을 감추고 인위만이 남습니다. 그 점에서 자연은 진리와 같습니다.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게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 이전에, 자연과 진리, 탐구의 관계가 이렇다는 겁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실(fact)은 라틴어 팍투스(factus)에서 온 말입니다. 팍투스는 ‘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파치오(faciō)의 과거분사형으로 ‘된 것’을 의미하고요. 영어로 치면 던(done)과 비슷하겠습니다. 사실은 그 자체로 인위를 전제합니다. 상상이라는 정신능력이 작용한 결과라는 뜻이겠죠. 상상은 감각을 전제합니다. 반면 진리는 감각을 전제하지 않죠. 예수의 조각상이 신 그 자체가 아닌 것처럼, 사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믿음이라 믿습니다.
선생님 좋은 글로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너무 나간거같아서 이어진 글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뺐는데, 역시나 말씀해주신 내용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과학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지가 없거나 확실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그 이미지를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다만,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이성적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만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그런것들이 이성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하는지 궁금합니다..!
첫 질문부터 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자연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말이 성립할까요? 자연이 무엇일까요? 자연은 인위의 반대입니다. 자연법칙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에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런데 자연의 흐름에서 모종의 법칙을 도출하는 것 자체가 인위입니다. 인과율은 상상의 산물이니까요. 자연법칙을 연구한 결과로 도출된 것이 자연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결코 진리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자연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순간 자연은 그 모습을 감추고 인위만이 남습니다. 그 점에서 자연은 진리와 같습니다.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게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 이전에, 자연과 진리, 탐구의 관계가 이렇다는 겁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실(fact)은 라틴어 팍투스(factus)에서 온 말입니다. 팍투스는 ‘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파치오(faciō)의 과거분사형으로 ‘된 것’을 의미하고요. 영어로 치면 던(done)과 비슷하겠습니다. 사실은 그 자체로 인위를 전제합니다. 상상이라는 정신능력이 작용한 결과라는 뜻이겠죠. 상상은 감각을 전제합니다. 반면 진리는 감각을 전제하지 않죠. 예수의 조각상이 신 그 자체가 아닌 것처럼, 사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믿음이라 믿습니다.
선생님 좋은 글로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너무 나간거같아서 이어진 글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뺐는데, 역시나 말씀해주신 내용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과학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지가 없거나 확실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그 이미지를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다만,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이성적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만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그런것들이 이성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하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