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에 관한 사소한 단상

이루지
2021/11/30
오랜만에 대학시절 선배를 만났다.
내가 대학 동기와 때늦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 선배는 토끼같은 부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학교 동기와 연애를 하고 있던 나에 대한 호기심은 한 잔 술이 들어가자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너거는 결혼 안하나?"
나도 남자친구도 비혼주의였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선배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때문에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까지 연애만 하고 살건데? 어서 결혼을 해야 애를 낳지. 지금 낳아도 노산이다"
결혼. 아이. 노산. 호기심에 가득찬 시선들...대충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불쑥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결혼도 아이도 생각 없는데요.." 
그는 이런 말은 생전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그럼 그 나이에 연애만 해서 우짤라고? "

무례한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동시대의 사람조차 출산과 결혼 그리고 연애를 한 줄로 이어서 수행해야 하는 과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내심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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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교 영화과를 나온 나와 남자친구는 그 시절 잠깐 썸을 타던 사이였지만 졸업과 함께 각자의 인생을 찾아갔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자발적 비혼주의자가 되었고, 나와 연애를 시작한 남자 친구는 나로 인해 (아마도!) 타의적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간혹 나는 내가 남자친구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기회'를 박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요상한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너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가 대답했다.
"음..아직은 글을 더 쓰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결혼은 모르겠지만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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