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
2024/06/26
종지
밖에 있는 것을 끌어들여
안을 채웠던 것이었구나
고작 종지 하나 쥔 것이었는데
마치 여의주라도 쥔양 자만했구나
겨우 종지에 담아 마중물인양 들여
작두샘 퍼 올리는 것이라고 애썼던 것이었구나
차면 넘칠 수밖에 없는 빈 서러움을 채우지 못해
밑이 닫힌 빈 항아리를 우물인양 으시댔던 것이었구나
밑을 뚫고 관정을 깊숙히 내려 둔 채
운주사 쌍배불처럼, 두께없이 투명한 양면 같은,
마중물 기다리는 텅 빈 작두샘이자고 했는데
심심 켜켜 흐르는 새 물 긷는 것이라 자만했던 것이었구나
층층에 쌓여 굳고 칸칸에 싸여 닫힌,
진흙으로 엉긴 마중물 덩어리였던 것이었구나
손가락 한마디 더 파지 않아서
쥔 종지로 밖을 퍼 담아 항아리 안을 채울 게 아니라
쥔 종지로 안을 한 층 더 파 냈어야 했던 것이었구나
쥔 종지로 안을 한 켜 더 퍼 냈어야 했던 ...
'봄[보다]'과 '씀[쓰다]'에 관심을 두고 일상을 살피는 중이고,
'생각[Text]'을 잘 쓰고 '생각의 바탕과 관계[Context]'를 잘 보려고 공부하는 사신출가수행자 무영입니다.
어느 시인의 시집에서 봤던,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고 한 Text와 Context를 매우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