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김애란 <비행운>

메리 오닐 · 메리 오닐
2024/02/19
김애란 <비행운>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김애란 <비행운>

『달려라 아비』를 읽으며 느꼈던 건 이야기가 아프면서 명랑하다는 것이었다. 웃프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비행운』을 읽으며 난 생각했다. '아, 김애란이 돌아왔다.' 『달려라 아비』에서 느꼈던 김애란 소설의 특징들─뒤집기, 결말 처리 방식, 명랑한 슬픔 등등─은 더욱 강해졌고, 길이는 더 길어졌고, 내용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웃픈 이야기'에서 '웃'보다 '픈'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분노가 아닌 체념과 견딤의 모습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장면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처연해진다.

여전히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혼자다. 생존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하지만 그 노력을 격렬한 감정으로 표출하지 않는 도도한 인물들. 하지만 이전 작품집보다 삶의 모습은 더 독하다. 그만큼 세상은 더 잔인해지고 냉혹해졌기 때문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 같은 세상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비행(飛行)을 꿈꾸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비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추락을 마냥 슬프게만 다루지 않는다. 인물들은 김애란 특유의 뒤집기 방식을 통해 추락한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처음 보낸 편지에 '엄마, 사식 좀.'이라는 다섯 글자만 담겨 있을 때(「하루의 축」), 그들의 소비를 따라잡고자 손톱케어를 받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녀의 축축한 겨드랑이만을 기억할 때(「큐티클」) 등등. 이런 방식이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웃음이 씁쓸한 웃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까움, 분노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친근한 표현인지, 애써 상대의 성(性)을 지워버리려는 노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선배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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