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김애란 <비행운>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김애란 <비행운>
『달려라 아비』를 읽으며 느꼈던 건 이야기가 아프면서 명랑하다는 것이었다. 웃프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비행운』을 읽으며 난 생각했다. '아, 김애란이 돌아왔다.' 『달려라 아비』에서 느꼈던 김애란 소설의 특징들─뒤집기, 결말 처리 방식, 명랑한 슬픔 등등─은 더욱 강해졌고, 길이는 더 길어졌고, 내용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웃픈 이야기'에서 '웃'보다 '픈'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분노가 아닌 체념과 견딤의 모습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장면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처연해진다.
여전히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혼자다. 생존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하지만 그 노력을 격렬한 감정으로 표출하지 않는 도도한 인물들. 하지만 이전 작품집보다 삶의 모습은 더 독하다. 그만큼 세상은 더 잔인해지고 냉혹해졌기 때문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 같은 세상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비행(飛行)을 꿈꾸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비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추락을 마냥 슬프게만 다루지 않는다. 인물들은 김애란 특유의 뒤집기 방식을 통해 추락한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처음 보낸 편지에 '엄마, 사식 좀.'이라는 다섯 글자만 담겨 있을 때(「하루의 축」), 그들의 소비를 따라잡고자 손톱케어를 받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녀의 축축한 겨드랑이만을 기억할 때(「큐티클」) 등등. 이런 방식이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웃음이 씁쓸한 웃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까움, 분노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친근한 표현인지, 애써 상대의 성(性)을 지워버리려는 노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선배는 곧...
@칭징저 감사합니다.
@최서우 꼭 읽어보세요. 기억에 남을 겁니다.
@악담 김애란을 많이 추천받았는데, 저도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약간 실망했다 비행운을 통해 다시 김애란 작가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수지 저 역시도 위로받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감상이었습니다.
절망도 명랑으로 승화 시킬수 있는건 역시나 작가의 재능 인것같습니다. 김애란 의 비행운 읽어보고싶네요!
메리님 글보니 오늘 묵득 김애란 소설이 그리워지네요.
김애란의 작품집은 모두 찾아 읽어보면서 김애란의 전작주의자로써 느낀 것은
내가 성장하고 성숙하고 아파하는 것처럼 김애란 문학도 성장하고 성숙하고 아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맞아요. 초기작이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사회의 계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많이 받았습ㄴ다. 솔까말 저는 두근두근내인생에 대하여 실망했었는데 비행운은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 읽고 한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찾게되는 이 중독성.
아마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등장인물에게서 위로를 받나봅니다.
절망도 명랑으로 승화 시킬수 있는건 역시나 작가의 재능 인것같습니다. 김애란 의 비행운 읽어보고싶네요!
메리님 글보니 오늘 묵득 김애란 소설이 그리워지네요.
저는 이 책 읽고 한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찾게되는 이 중독성.
아마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등장인물에게서 위로를 받나봅니다.
@수지 저 역시도 위로받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감상이었습니다.
김애란의 작품집은 모두 찾아 읽어보면서 김애란의 전작주의자로써 느낀 것은
내가 성장하고 성숙하고 아파하는 것처럼 김애란 문학도 성장하고 성숙하고 아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맞아요. 초기작이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사회의 계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많이 받았습ㄴ다. 솔까말 저는 두근두근내인생에 대하여 실망했었는데 비행운은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