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과 꽃잔디 동산, 사람 – 정읍, 진안 여행 3
2023/11/09
내장산과 꽃잔디 동산, 사람 – 정읍, 진안 여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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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와인에 막걸리에 소주에 맥주에 온갖 짬뽕을 해서 부어라 마셔라 한 사람들에게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하라? 설마 반 난처함 반의 얼굴들이 ‘안될걸’을 합창하고 있었으나 유창은 단호했다. “안 그러면 내장산 초입도 못갈 수 있어.” 하긴 그렇다. 조선 시대부터 단풍으로 유명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버젓이 등장하며, 일제 강점기에도 수천 명의 ‘관풍객’(觀楓客)이 조선 팔도에서 몰려들어 “1인당 3원씩만 잡아도 9천원의 수입”(동아일보 1930년 11월 8일)을 올릴 정도인 단풍 명산 아닌가. 한창 때면 톨게이트에서부터 교통 지옥문이 열린다는 곳이기 유창의 채근도 이해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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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다음날 새벽 전원이 기상했고 동트는 새벽을 뚫고 내장산으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더하여 내장산 입구 첫 주차장에 차를 들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으나 그 새벽에 이미 내장산 초입은 도때기 시장 일보직전이었다. 하긴 어제 버스 전용차선을 줄지어 달리던 버스들이 대부분 내장산행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만 해도 양호하리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올해 내장산 단풍은 ‘조선 8경’답지는 않았다. 기후 변화는 내장산 단풍의 명성마저 좀먹고 있었다. 원래 일교차가 크고 비가 덜 내려야 단풍이 예쁜 법인데 반팔 차림도 이따금 보일 만큼 역대급 ‘11월 더위’가 지속됐으니 단풍이 물들기엔 적절치 않은 날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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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단풍의 절정을 본 적이 있는 이로서 여간 실망스럽지 않은 풍광이었다. 나 뿐 아니라 여러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관풍객들의 한탄 소리가 들렸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동네 뒷산이네 그냥. 그때 어느 한 괄괄한 아주머니의 말이 귀를 찔렀다. “기껏 놀러 와서 왜 타박이냐. 있는 거 보면 되지. 그라고 섭하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하긴 그렇다. 여행은 추억으로 남으면서, 대개는 다음의 기약을 남...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