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규렴 가문의 한글편지 (2) : 밖에서는 근엄하지만, 내 가족에게만은 따뜻한 차가운 대전의 남자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4/05
송상기의 호이자 그가 지은 건물 <옥오재(玉吾齋)>. '옥오'란, 깨질 지라도 내 마음을 옥 같이 지키겠다는 뜻이다. (한국관광공사)
킹갓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은 불교계와 사대부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한문이 표준 문자로 쓰이던 시대였고, 한글은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으로 속된 글자라 여겨졌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내 가족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결국 남성들 또한 한글을 배울 수밖에 없게 만들었는데요. 16세기를 거쳐 17세기 이후에는 송시열이나 송규렴과 같은 당대 유학자들의 샤라웃을 받던 유학자들조차도 가족들,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를 상대로는 한글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물론, 정조와 같은 왕들 또한 그러했죠. 무엇보다, 구어체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편지는 살아있는 말의 묶음이며, 마음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글편지에는 한문 편지에서는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딸아이를 염려하는 아빠의 편지를 읽어보시죠.
   
네 효천증(哮喘症, 천식)이 조금 나았다고 하니, 정말 기쁘구나. 아직 남아 있는 증세가 있겠지만, 조금씩 나아질 테니 그렇게 알고 마음을 편히 가져서 몸을 잘 조리하거라. 내가 편지를 몇 번 보내지 않은 건, 네가 아픈 와중에 편지를 읽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열심히 답장하느라 몸이 상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서운해할까 봐 이번에는 짧게나마 편지를 써 보낸다. 부디 답장하려거든, 네가 직접 쓰지 말고 반드시 대필을 시켜라. 나는 내내 무사히 있다. 부디 편히 몸을 조리하여라.
   
10월 26일. 아비.
   
은진송씨 송규렴가 『선찰』 언간
   
송규렴과 안동김씨 부부는 2남 1녀를 두었는데요. 딸은 노론의 명문 가문인 이익명(李益命)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유독 이 딸이 병치레가 잦았던 듯해요. 물론 이미 누군가의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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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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