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사랑 고백
2024/05/03
내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미술학원 선생님을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그건 엄마의 소망이었고 내 꿈은 항상 같았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미술학원 얘기를 꺼내면 가르치는 것과 그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똑순이처럼 답했다. 미대를 졸업할 때 졸업 전시 주제를 ‘팔리는 작품’으로 잡았다. 똑순이처럼 답했지만 나 역시 그림만 그려서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 많았다. 팔린 법한 그림을 그렸고 부산에 사는 누군가에게 팔렸다. 좋은 출발이었지만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다. 그 그림은 부산에 사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팔린 그림은 몇몇 사람만 볼 수 있고 나 또한 다시 보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니 마음이 영 복잡했다. 그렇다고 그림을 팔지 않으면 그건 직업이 될 수 없는데… 그런 고민을 할 때 그림책을 만났다. 졸업 전시를 보러 온 편집자가 그림책 일러스트를 청탁한 것이다. 그림을 그려서 돈을 받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으면서, 원화는 내가 갖는다? 세상과 타협한 느낌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정도면 아주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정도면’ 따위의 거만한 생각이 쏙 들어가는 그림책을 만났다. 이수지 작가의 <동물원> 이라는 책이었다.
<동물원>은 동물원에 놀러간 엄마 아빠 아이가 겪는 짧은 소동을 담은 책이다. 글과 그림이 따로 진행되는 형식도 재미있지만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