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
2023/12/01
By 김영주 alookso 에디터
아이가 갖고 싶어도 현실적인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는 집값과 양육비를 걱정하며 출산·육아에 앞서 결혼부터 포기하는 분위기다. 특히 여성은 커리어와 가정이라는 두 욕망 사이에서 줄다리기한다.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고 했다. 주변에 먹이와 둥지가 없는 상황에서 새끼를 낳았다가 주체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어렵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는다. 육아의 어려움과 보람을 함께 느끼고 있는 워킹맘 네 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이를 낳으면 뭐가 좋거나 달라지는지 물어봤다.
- “어린 시절을 다시 사는 느낌” 정유진(6세 양육, 유튜브 '마미살롱' 운영자, 아나운서)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느낌이다. 아이를 보면서 어릴 때의 나를 떠올린다. ‘이런 걸 하고 싶었지’, ‘이런 걸 좋아했지’, ‘엄마가 이런 걸 해줄 때 참 좋았지’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나의 기대를 투영하기보다는 나보다 더 좋은 경험, 더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이가 5살일 때만 해도 주변에 애를 꼭 낳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보면 너무 행복하고 예쁘고 기쁘긴 했지만, 그래도 낳지 않으면 이 정도만 모르고 지나갈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6살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다른 친구 집에 가서 자고 올 때 깨달았다.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너무 허전했고 상실감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 덕분에 삶이 굉장히 충만해져 있었던 것이다.
- “당연한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하서연(가명, 7세 양육)
아기를 낳자마자 엄마들은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 맞아요?” 묻는다. 눈코입 다 있고, 몸에 피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나고, 발톱이 다 있는 게 모두 감동이다. 자라면서 아이가 알아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신기하고, 시간 맞춰 매일 학교에 가는 것도 기특하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너무 감사하다고 느끼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상에 사소한 감동이 가득해진다.
- “가족을 끈끈하게 만든다” 하서연(가명, 7세 양육)
아이는 그냥 예쁘다. 시댁이나 친정에 가서 웃음꽃이 필 때면 보람차다. 아이 하나 있다고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가족끼리 나눌 것도 많아진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부모님께 딱히 안부 전할 일이 없었는데, 아이의 성장 과정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것만 해도 돈독하고 끈끈해진다. 할머니가 아기 사진을 보려고 카톡을 배웠을 때 정말 뿌듯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이혼했을 수도 있다. 이혼 직전까지 갈 만큼 엄청나게 싸웠지만, 우리가 아이를 태어나게 했으니까 엄마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헤어지자고 합의했다. 부부 상담을 받고 2박3일 부부 프로그램도 다녀오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 “이 행복감… 할 말이 없네” 김지영(1세 양육, ‘비버밸리‘ 운영*)
출산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아웃풋을 만드는 행위다. 아이를 낳은 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아이가 나와 장난치며 웃고 소리 지를 때 눈물나는 행복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눈물나게 힘들 때도 있지만. (웃음) 이 눈물 나는 행복을 살면서 꼭 한번 경험해 보시면 좋겠다. 부모, 연인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무리 말로 해도 낳기 전엔 잘 모르는 영역이다.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다. 현재 김지영 씨는 IT 기업에서 커뮤니티 리드로 일하고 있다.
- “아이 때문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 민세진(15세·20세 자녀, 동국대 교수)
살면서 진심으로 웃을 일이 얼마 없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자아 성취 같은 게 있지만 순수하게 즐거워서 웃는 건 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일에서 오는 보람, 자녀가 주는 즐거움 둘 다 느끼며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