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어렵다?’ 육아 예능이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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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By 김영주 alookso 에디터

지난 7월,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이 엠브레인에 의뢰해 2030 미혼 남녀에게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남성은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43.6%), ‘자녀를 돌봄·양육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1.5%) 순으로 답했다. 반면 여성은 ‘육아에 드는 개인적 시간·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서’(49.7%),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35.1%) 순이었다. 남성은 경제력의 부담, 여성은 시간과 노력의 부담을 느낀다는 결과다.

앞선 인터뷰에서 만난 엄마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6세 자녀 한 명을 양육 중인 정유진 씨는 “한 명을 공들여 잘 키우고 싶은 부모가 많다”며 “아이에게 필요한 시간, 체력, 경제력 등 자원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7세 외동 자녀를 양육 중인 하서연 씨(가명)는 “딸에게 해줘도 해줘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며 “둘째에게 첫째만큼 못해줄 것 같다”고 했다.

아이 한 명에게 드는 돈과 시간이 늘어났다. 왜 이렇게 됐을까?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인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물었다. 하정훈 전문의는 방송 프로그램과 정부 정책이 ‘육아는 힘들기만 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애 키우는 건 손해? 전 국민 가스라이팅”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아이 키우는 건 힘든 게 맞다. 그러나 애 낳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애 키우기 힘들다고, 어렵다고 말하는 건 비정상적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 상대로 ‘애 키우면 힘들고 손해’라고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육아란 처음엔 힘들어도 익숙해지면 재밌어진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것까지 보여주진 않는다. TV에 나오는 육아법 상당수는 문제가 있는 애를 다루는 방법이다. 그 애한테는 맞을 수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 방법을 사용하면 도리어 키우기 더 힘들어진다.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2020년부터 채널A에서 방영 중인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는 아이들의 문제적 행동에 ‘솔루션’을 처방한다. 실제로 하서연 씨는 TV에서 본 방법을 따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처럼 MBN <고딩엄빠>도 어린 나이에 육아를 하며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을 자극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이 있다. 


  • “문제아만 보여주면, 불안감 조성해” 하정훈 전문의
방송은 5% 잘못된 아이를 보여주며 불안을 부추긴다. 문제 없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95%인데. 이러면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기에 부모는 애가 잘못될까 봐 자꾸 망설이고 자신감도 없어진다.

예전부터 TV 출연 제의를 거절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자꾸 잘못된 상황을 고치는 걸 하자고 한다. ‘그런 거 하지 말고 문제 없는 애를 잘 키우자’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그렇다면 잘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육아 예능’은 어떨까. 2013년에 방영했던 MBC <아빠! 어디가?>, 현재도 방영 중인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대표적이다. 현실 육아보다 아이들의 귀여운 순한 모습을 주로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수많은 랜선 이모·삼촌(인터넷으로 보는 아이를 조카처럼 대하는 사람)을 만들며 재미와 감동을 준다.

  • “연예인 보면, 육아에 돈 많이 필요할 것 같아” 하정훈 전문의
방송이 만든 이미지 때문에 요즘 부모들은 자식한테 자꾸 더 해주고 싶어한다. 전부 다 해주거나 뭘 더 사줘야 잘 키우는 것으로 착각한다. 아무것도 없이 잘 키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비싼 육아템을 사려니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일상을 재밌게 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정훈 전문의는 긍정적인 모습만 비추는 육아 예능이 오히려 육아하기 어려운 현실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출산 전인 사람이 ‘아이를 키우려면 저 정도 넓은 집은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식이다. 육아 중인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종합하면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문제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여유 있는 가정 생활을 보여준다. 둘 다 평범한 일반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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