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사람이 죽었다

2021/10/30
2013년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가 죽었다. 영국에도 우리 국가장에 해당하는 국장(State Funeral)이 있다. 당시 영국 <미러>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처의 국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75%에 이르렀고, 국장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져 순식간에 수만명이 참여했다. 켄 로치 감독은 전세계 노동자, 서민에게 재앙을 안겨줬던 대처의 죽음을 조롱하며 “장례식을 민영화하자”고 제안했고, 시민들은 트위터로 즉석 파티를 열고 "잘가라 마녀"를 외쳤다. 대처 자신도 죽기 전에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내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길 원치 않으며 행사비용으로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까지도 ‘대처리즘'을 버리지 않은 셈이다.

"세종대왕의 공과를 가리자"거나 "이순신장군의 공과를 가리자"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보통 그런 말이 따라다니는 인물들은 공보다 과오가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다. 영국에서 대처는 그런 말이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대처는 다른 나라와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켰지만, 탱크를 몰고 런던을 점령해 권력을 찬탈하지는 않았다. 대처는 무고한 노동자들을 체포하고 구속했지만,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민에게 총을 쏴 죽이지는 않았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인들은 박정한 사람들이다. 관대한 나라 한국에서는 노태우씨가 죽은 날 성대한 국가장이 결정됐다. 오늘 노태우씨의 장례식에서는 이런 추도사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투철한 군인정신과 국방의식을 익혔을 뿐 아니라,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다. 이는 이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이 숙명을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 바로 ‘군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야’라고 말씀한 배경이었다.”

노태우의 유족들은 그의 생전에 부단히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광주의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아마도 곧 생을 마감할 노태우의 마지막이 걱정되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유가족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정부가 나서서 그의 삶을 정당화할 무대를 마련해주었고, 무대에 오른 노재봉은 보란듯이 노태우의 군사반란을 아름답고 가증스럽게 미화해냈다. 도대체 누가 이 정부에 그런 걸 허락할 권한을 준 걸까. 

공적과 과오를 균형있게 평가하자고 그런다. 대처가 그랬듯, 노태우 씨에게도 재임기간 여러 공적이 있다. 중국 수교를 비롯한 북방외교의 진취적인 성과들, 토지공개념 원리를 정책에 반영한 과단성,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이행기의 대통령으로서 준수한 성과를 보였다. 공은 공대로. ok. 이번엔 간단히 그의 '과'를 말해보자. 자신이 지휘하던 휴전선 경계부대를 끌고 내려와 권력을 찬탈한 행동대장. 그리고 그 반란으로 만든 질서를 유지하고자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원흉. 재임기간 내내 행해진 공안탄압이나 수천억대 부정축재 같은 것들은 차라리 소소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것들을 한 저울에 올려놓고 균형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나를 설득하려면 노태우씨가 전생에 우주를 구했다는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각자가 가진 마음의 저울이 있겠지. 누군가는 충분히 용서하고 애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 노씨가 저지른 국가폭력의 수단이자 주체였던 국가가 나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걸 균형이라고 부르는 요상한 저울이 아니라 "나쁜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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