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존재하기 위해 소모되는 노동

허태준
허태준 · 작가, 출판 편집자
2022/11/12
여름에도 시원한데, 비가 올 때는 좀 많이 습해요. 편집자님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명에 반사된 가구나 자잘한 물건들에는 본연의 색과 무관하게 주황빛이 들었다. 그는 여기가 예전에는 바다라서 그렇다고 했다. 건물이 서 있는 자리가 매립으로 만들어진 땅이니까, 지하 1층인 이곳은 분명 바다였을 거라고. 빛이 채우고 있는 공간 가득 물이 들어차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었던 건지 나는 일하는 내내 혼자 바다를 생각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잔잔하게 일렁이는 빛과 닿을 수 없는 지평선에 대해. 그리고 내가 잠겨 들었던, 무겁고 깊은 어둠으로 둘러 쌓인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 바다는 어디에 더 가까울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졸음을 달아내 듯 길게 기지개를 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넉넉잡아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내린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로소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이렇게 적으면 무척 번거로울 것만 같지만 의외로 출퇴근에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심심할 때면 가방에서 정일근 시인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꺼내 읽었다.
  슬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계속 모아둔 돈으로 지내는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으니까. 간간이 들어오는 수익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
허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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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이란 이름으로 일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습니다. 현재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의 책임편집 및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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