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사교육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27

  2008년 4월엔 노회찬, 심상정이 총선에서 낙선했다. 5월엔 두 달 다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6월엔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관련 없는 이 사건들이 광장에서 묘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여름이었다. 
 
 그 해 광장에는 미국산 소고기 반대, 한미 FTA 무효, 같은 구호들이 넘실거렸다. 그 장엄한 구호들이 청소년들의 입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선동'이었다. 그 말이 반쯤은 맞았다. 그 때 그들은 선동당했다기보단 세상을 선동하고 있었다. 나도 광장으로 나섰다. 그 영광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 

  외로웠다. 교복을 입은 채 삼삼오오 모여 촛불을 들고 있던 학생들에겐 묘한 질투를 느꼈다. 그 해맑은 모습을 질투했던 건 나만이 아니라서, 학교에서 나온 학주들 역시 광장 곳곳에서 그들을 감시했다. 교복을 벗고 있던 나는 학생들에게도 학주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촛불이 있었으므로 ‘밀실’에서도 ‘광장’을 욕망하게 되었다.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인터넷으로 청소년 인권 단체와 노회찬, 심상정이 있던 ‘진보신당’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던 저녁은 덜 외롭고 더 즐거웠다. 한낱 자퇴생이었던 나는 이제 청소년 활동가이자 당원 동지가 되었다.   

  그 해 광장의 구호는 결국 좌절됐다. 촛불은 분명 모두의 마음 구석탱이에 생채기를 남겼다. 나와 함께 했던 청소년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선동 당한" 과거의 기억들을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떤 이들은 촛불을 칭송했고 또 다른 이들은 촛불을 비웃었지만, 나는 그 두 태도에 모두 동의할 수 없었다. 촛불을 칭송하기엔 세상은 그대로였고, 촛불을 비웃기엔 촛불에 담겨있던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여전히 유효했다.

 어찌됐건 광장을 수놓은 촛불은 꺼졌다. 광장에서 나온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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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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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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