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정지와 해석 불가 - '타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6/24
정미경의 소설 「타인의 삶」에 나오는 문장. 출처-창비 공식 트위터
“서로가 각자의 옷을 입는다”

너그러운 판단 정지와 해석하지 않는 인간학 - 정미경, 「타인의 삶」
 
정미경의 「타인의 삶」은 연애소설로서 일견 유연해 보인다. 평온한 일상을 침범하는 소소한 사건과 갈등이 알맞게 배치되어 있고 바쁘고 고된 현대인의 삶 역시 촘촘히 노출되어 있다. 또한 남자 주인공 ‘현규’가 선언한 갑작스런 이별에 대처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며, 결국 이별을 감행하며 견뎌내는 ‘나’가 발견하는 몇 겹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단편의 독자가 집중력을 가지고 견뎌낼 만큼 딱 알맞춤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날 때마다 조장되는 적당한 긴장을 탐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 꼭 그만큼의 눈높이에 맞춰 보여주고 제시하는 작가의 노련한 솜씨는 과연 정미경 답다. 결국 그녀는 ‘타인의 삶’을 이야기해도 될 만한 자격을 소설의 플롯과 스토리뿐만 아니라 작품의 질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내주고 있다.
정미경의 소설 「타인의 삶」이 실려있는 <나의 프랑스식 세탁소>(창비)
전술한대로 「타인의 삶」은 웰메이드 연애 소설의 정식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결말부의 세련된 이별을 하기까지 겪게 되는 연인 간의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사건들과 그에 따른 감정선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촉망받는 외과의사 ‘현규’와 틈틈이 밀린 학위 논문을 써가며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결혼이라는 결말을 자연스럽게 기대해도 좋을 만큼 잘 어울리는 관계이다. 

신문사에서 믿었던 여교수에게 발등이 찍혀 “어이없는 낙종”을 하고 부장에게 닦달을 당한 ‘나’와 빈틈없이 바쁜 수술 일정 속에서도 잠시 “밤 벚꽃”을 보러가자며 “따뜻한 만두와 딸기 바구니”를 들고 ‘나’의 아파트를 찾는 ‘현규’는 서로 잘 어울리는 사이다. ‘나’는 자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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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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