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중일기] 선상의 크리스마스
2023/12/26
내 기억 속 모든 크리스마스는 항상 행복과 은총이 흘러넘쳤다.
좋은 기억들의 연속성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깨어질 것만 같았다. 도무지 태평양 한가운데의 배에서는 기적을 바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따듯한 시간을 보낸다. 항상 진수성찬이 나오는 배에서는 특식으로 양갈비가 나왔다.
아직은 배 안에 의리, 동료애, 우정 이상의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한 사람이 없기에 방 안에서 홀로 양갈비를 뜯었다. 항상 허파를 울려오는 배의 육중한 진동마저도 나의 우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적막하게 변해있었다. 나의 밀실에는 온 세상 그 어느 소리도 침투해 오지 못했다.
고독에 도전하기 위해 사랑하는 그리고 한때 사랑했지만, 왕래가 잦지 않은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냈다. 그중 성당의 A 자매님과 인사를 나눴는데 곧 성탄전야 미사가 시작한다며 이쁘게 꾸며진 성전 사진을 보내줬다.
‘아, 밖에 있었더라면 T 자매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구나.‘
미사를 못 드리는 대신 성탄 미사와 성가대 녹음 파일을 부탁했다. 어차피 한정된 WIFI 용량 때문에 24년 1월 1일 평택항에 입항에서야 들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층 더 우울해진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 차게 식은 작은 캔맥주를 딴다. 냉동고와 냉장고가 함께 있는 작은 일체형 냉장고의 냉동고 바로 밑 칸은 맥주 전용 좌석이다.
육지에서 가져온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면 색이 변하는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 분홍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황금비율로 구름처럼 아름답게 거품이 낀 맥주를 단숨에 반 이상을 들이켠다. 입가에는 산타클로스처럼 흰 수염이 만들어진 채 이게 육지에서 수많은 연인들이 하고 있을 뽀뽀보다 더 좋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 세례명인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룡 이름 같다며 재밌어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친구와 카톡을 이어갔다. ...
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