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노숭의 짠내나는 유배 생활 (2) : 노비 say “답답해서 내가 번다!”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5/02
심노숭 그 잡채...☆ (MBC)
조선시대의 유배 생활은 기본적으로 돈 잡아먹는 하마였습니다. 유배 갈 때의 압송 비용, 유배지에서의 거주지 비용, 관계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까지 모두 유배객 본인이 부담해야 했으니까요. 유배 가는 것도 서러운데, 온갖 비용까지 다 부담하니 그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래서 일가친척이 역모에 걸려 모조리 유배를 간다면, 그건 그 가문이 대대로 쌓아온 경제적 기반을 모조리 파괴되는 ‘경제적 떡락’이었지요.
   
심노숭 또한 오롯이 홀로 그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낙후된 지역이었던 기장현에 유배 온 후, 그는 한동안 거주지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습니다. 유배객은 보수주인(죄인에게 거주지와 식사 등을 제공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사람)을 구해야 했는데요. 원칙적으로는 나라에서 보수주인을 지정했으나, 죄인이 도망가거나 죄가 늘어나면 보수주인이 연대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보수주인이 되는 것을 기피했지요. 따라서 보수주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대가를 원했습니다. 심노숭 또한 단가나 거주지의 불편함 등의 문제로 보수주인을 구하지 못해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결국, 심노숭은 관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보수주인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배지로 이동하고 거주지를 정하는 데만 해도 약 한 달이나 걸렸는데요.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간 후, 심노숭은 한 달 생활비를 결산합니다.
   
1801년 3월 30일 - 『남천일록(南遷日錄)』
   
유배 올 때, 내가 마련한 노잣돈은 총 27냥이었다. 그중 오는 길에 쓴 비용이 총 9냥이었다. 여기에 말을 빌리는 비용으로 2냥이 들어갔고, 3월 10일부터 25일까지 생활비로 8냥을 썼다. 이것이 총 19냥이다. 남은 돈이 8냥인데, 2냥은 다른 이에게 꿔줬다. 2냥 5전은 보수주인 김경순에게 지급했고, 5전은 술과 담배를 사는 데 썼다. 시종하는 노비 걸노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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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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