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봄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3/23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언제부턴가 봄꽃 피어나는 순서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른바 춘서(春序). 봄이어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기에 봄이라는 법정 스님의 유명한 말처럼, 춘서에 따라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며 봄이 서서히 곁으로 다가오는 걸 자연스레 느끼며 자라온 듯하다. 

  무작위로 배정받은 중학교는 집에서 거리가 아주 멀었다. 버스를 타고 시의 반대편 끝자락까지 가야 했다. 종점에 내려 좁고 긴 골목을 지나야 비로소 학교 정문이 나왔다. 그 좁고 긴 골목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건 함께 걷는 친구와 개나리 때문이었다. 그 골목에는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빈틈없이 개나리가 드리워져 있었다. 노란 개나리가 동시에 활짝 피어나 담벼락을 감싸면, 봄이라는 걸 '봄'으로써 절절히 체감했다.

  교정에 들어서면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아름드리 벚나무가 운동장 한쪽에 우거져 있었다. 개나리 다음은 벚꽃이었으니 하얗게 흩날리는 벚꽃 잎을 손바닥 안에 담아보려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지극히 여중생다운 봄을 맞곤 했다. 하얗고 찬란한 벚꽃 눈이 한창 내리고 나면, 비로소 철쭉의 계절이었다. 매화나 살구꽃, 산수유, 개나리 등이 다급하게 꽃망울을 툭툭 터뜨린다면, 철쭉은 짐짓 여유롭게 완연한 봄이 되어야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철쭉이 피면 봄이 깊어졌다는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부는 바람은 아무리 거세도 간지럽기만 했다. 

  봄이라고 해서 다 같은 봄이 아니었다. 춘서의 가장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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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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