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이름이 생겼다

허태준
허태준 · 작가, 출판 편집자
2022/11/28
*2년 전 시점에서 쓴 글입니다.
*<죽진 않는 병>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일어나 양치를 하는데 뱉어낸 물에서 다량의 피가 섞여 나왔다. 너무 놀라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세면대 가득 피가 고였다. 뭐야, 뭔 일이야. 손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는 동안 잇몸이나 혀에 상처라도 난건가 싶어 양칫물을 헹궈낸 후 손가락으로 입 안을 이리저리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딱히 찢어진 부분도,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도 없었다.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걸 알 수 없어 두려우면서도, 나는 곧 오늘까지 납품하기로 되어 있는 작업에 생각이 미쳤다. 병원을 다녀오면 늦을 게 분명했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오늘 작업을 마무리하고, 여유가 생길 때 병원에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막연한 걱정보다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문제가 더 거대해보였다. 그렇게 세면대에서 씻겨 내려가는 피처럼, 두려움도 일상에 휩쓸려 이내 잊혔다.

  병원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난 일이었는데, 정말 불현 듯 떠올랐다. 아마 의사에게 들었던 폐결핵의 주요 증상 중에 ‘각혈’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정체불명의 사건’은 그 단어를 통해 금방 나의 아픔과 연결됐다. 아마 그 즈음부터 내 몸에는 결핵균이 퍼져 있었을 것이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최근 들어서야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본가 근처 종합병원에서 받은 진료는 이전 병원과 거의 비슷했다. X-ray와 CT 사진을 받아왔기 때문에 추가로 검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치료 과정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내가 2주 동안 1인실 음압병동에 입원하게 될 것이고, 약물 치료와 호흡기 치료를 병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무적으로 고개를 끄...
허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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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이란 이름으로 일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습니다. 현재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의 책임편집 및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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