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조선이 문제일까? 조선은 정말 나쁜 나라였나?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12
1.
북쪽 국경은 안전하며 남쪽 해안도 마찬가지다. 국경 너머도 평온하다. 강력한 제국이 패권을 쥐고 통제하고 있다.

왕국 내부도 마찬가지다. 미치광이가 왕좌에서 쫓겨난 지도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끔찍한 통치와 그에 따른 혼란은 이제 전설과 민담의 소재일 뿐이다. 어린 왕이 다스리고 있으나 어머니인 대비의 기반이 탄탄하고 중신들의 지지가 강력하다. 세상은 정말 태평성대다.

그러나 태평성대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휘두르지 않는 검은 무디어 지고 당기지 않는 활은 시위가 늘어지기 마련이다. 또, 세상이 지나치게 평온하면 야심만만한 젊은이에게는 이름을 알릴 기회가 없다.

사내가 그런 사례에 해당했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약관을 조금 넘긴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름을 알릴 기회가 마땅하지 않았다. 국경의 치안을 유지하고 밀수를 단속하는 임무를 받았으나 이름을 알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밀수꾼 단속으로 이름을 알리기는 어렵지 않나.

다만 늘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사내에게도 그런 '예외'가 기회로 찾아왔다. 은을 비롯한 밀수품을 적발했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엄청나게 고가일뿐만 아니라 '밀수품의 주인'이 남다른 사람이었다.오랫동안 정승을 지냈고 대비-어린 왕을 앞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척신이 '밀수품의 주인'이었다.

그랬다. 사내가 기다려온 '이름을 알릴 기회'가 틀림없었다. 사내는 망설이지 않고 밀수품을 압수했다. '심통원 대감이 물품의 주인인 것을 아십니까'며 거들먹거리는 녀석에게는 곤봉으로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다.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대신 크케 키우기로 마음먹은 만큼 압수한 물품을 강변에서 불태웠다. 그리고 심통원, '밀수품의 주인'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심통원의 정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그 일을 문제삼았다. 급기야 심통원이 파직당했다. 심통원이 누구인가! 대비의 남동생과 함께 권력을 주무르는 척신이다. 그런 척신을 탄핵하는 것은 선비의 의무가 틀림없지만 자칫 목이 달아날 위험도 있다. 사내도...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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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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