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31
반복 님께서 제 글에 반박하는 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팩트를 강조하셨기에 주신 말씀을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양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학살의 책임자라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한인 독립군을 포위, 무차별 학살했고, 이때 독립군 700~800명이 학살되었으며 부상자 수백 명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개입했다는 건 ‘의혹’에 불과합니다. 이 건을 흉상 철거의 근거로 제시한 국방부조차 “홍범도 장군은 1921년 6월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시베리아)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내용들도 단순히 ‘의혹’에 불과하다는 데 궤를 같이 하며, 오히려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부분들이 더 많습니다.
가장 먼저, 말씀하신 700~800명 학살, 벌목 노동장으로 끌려간 독립군이 1,000명이 넘는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보면, 가해자 측인 고려혁명군 주장으로 사망자 36명, 포로 864명 등 희생자가 1,012명으로 추산되었습니다. 피해자 측인 대한의용군 집계로 전투 중 사망, 익사, 행방불명 인원이 총 600명, 포로 917명 등 전체 성원 약 1,500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혁명 동지로부터 죽느니 차라리 강물 속에 빠져 죽겠다고 투신자살한 대원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죽임당한 사람의 수는 600명 이하라고 보는 것이 팩트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대한의용군 병력은 총인원 1,400여 명의 부대였습니다. 포로로 잡힌 게 800명 중반에서 900명 초반으로 추산되는데, 나머지 인원을 전부 몰살했다고 하더라도 700~800명이라는 수치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국 독립군이 궤멸되었다는 말씀도 핀트가 틀렸습니다. 자유시 참변 이후 러시아령 이만에 남은 한인...
홍범도를 습격했던 김오남과 김창수가 독립운동가란 증거는 없습니다.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도 없고, 학계에서 이들의 행적이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무슨 근거로 홍범도를 음해하는 자의 주장에 동의하신 건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