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3/08

강제징용 판결과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협상’에서 주요 쟁점은 ‘개인 청구권’의 소멸 여부였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 국가 간 청구권은 물론, 개인 청구권 문제까지도 모두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입장은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담깁니다. 반면,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진용 배상 판결 당시 문재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라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협상은 협상입니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는 양국 외교 관계에서 큰 모멘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일위안부합의를 ‘피해자를 건너뛴 국가 간의 보따리 장사’로 기억하고 있지요. 반면,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문제투성이였던 한일위안부합의는 일본 측에서는 ‘최대한의 양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분노했던 건 일본 정치권의 일관된 반응, 즉 “위안부는 전쟁 범죄가 아니다.”, “강제 연행은 증거가 없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위안부합의가 ‘불가역적’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피해자의 호소에 재갈을 물렸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그러한 한일위안부합의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사죄도 사과도 아닌 이 표현은 일본 정치계에 변화가 없는 한, 당분간 우리 현대사에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최대한의 표현으로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강제징용 협상안을 통해 우리 스스로 ‘불가역적’이라는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일위안부합의보다 더 퇴보한 수준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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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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