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어떻게 태국 군부 독재와 충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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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 글로벌화가 되면서, 케이팝이 갈수록 한국 바깥의 문제에 더 긴밀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다는 게 제가 요새 많이 얘기하는 테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을 한 번 더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랜드라인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롭게 론칭할 걸그룹은 하이키(H1-key)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사실 새로운 그룹의 데뷔라는 건 언제나 논란으로 점철되는 일입니다. 어찌보면 일종의 '신고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데요. 기존의 팬들이 새로운 그룹의 등장을 호기심 갖고 지켜보기도 하지만, 견제하고 싶은 심리도 당연히 발생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화력을 불태우는 것 자체가 아이돌판의 일상적인 모습이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논란들이 주로 견제의 필요성이 높은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할 때 주로 터지는 것을 생각하면, 중소 기획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 그룹이 논란이 되는 것은 좀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논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이례적인 일이 왜 발생했나를 알 수가 있죠. 하이키 논란의 중심지는 한국이 아닙니다. 바로 태국입니다.

https://alook.so/posts/1RtJR2

일전에 얼룩소에서 처음 쓴 글이 동남아시아, 태국에서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된 리사의 위상에 관한 글이었죠. 사실 리사 뿐 아니라 태국은 이미 케이팝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으로 거듭난 상태입니다. 유명 아이돌 중 태국인 멤버들만 꼽아봐도

1. 닉쿤(2PM)
2. 뱀뱀(갓세븐)
3. 리사(블랙핑크)
4. 쏜(CLC)
5. 민니((여자)아이들)
6. 텐(NCT)

뭐 대충 좀 알려져 있어서 제가 인지하고 있는 정도만 이정도는 됩니다. 일본, 중화권 바깥을 제외한다면 정말 이례적인 수준으로 많다고 할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유리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태국은 화예(華裔)가 많기 때문에 한국과 외관이 비슷한 인적 자원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오랜 기간 동남아시아의 경제와 문화를 주도해온 풍부한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케이팝이 한중일을 넘어 국제화를 추구할 때 가장 먼저 진출하기 좋은 나라였던 것입니다. 리사는 그런 상황에서 중국계를 중심으로 한 태국의 전통적 엘리트 집단 바깥에서 글로벌 스타로 대성공 했기 때문에 폭발적 인기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하이키를 둘러싼 태국 케이팝 팬덤의 반응은 바로 그러한 태국의 엘리트와 대중 갈등을 재료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태국에서는 코로나 판데믹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었습니다. 여느 나라의 정치적 사건이 그렇듯 여기도 장구한 역사와 복잡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만 최대한 간략하게 배경을 설명해드려보고자 합니다. 태국은 식민화 없이 자체적인 근대화를 성취한 나라였고, 90년대에는 발전한 시민 사회의 주도로 민주화도 이룬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식민화를 비롯한 여러 정치적 충격이 없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태국의 지배 계층은 엄청나게 견고하고 강력하며, 또 몹시 폐쇄적입니다. 중국계를 중심으로 한 군부, 관료, 자본가 네트워크가 방콕에 오랜 기간 자리 잡았죠. 사실 태국의 민주화는 방콕의 중산층들 주도 하에 엘리트층 안에서 균열을 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즉, '하이쏘'로 불리는 엘리트들과 방콕 중산층 바깥의 인구는 민주화 과정에서도 정치적으로 배제된 존재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2001년 탁신 친나왓의 등장 이래로 이러한 구도는 변화하게 됩니다. 탁신은 포퓰리즘 구호와 여러 정책을 통해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북동부 이싼 지역의 농민들을 새로운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탁신은 왕실-군부-불교-관료-자본의 결탁 하에서 자신들을 소외시켜 온 태국 체제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는 데 탁월했습니다. 이로써 탁신의 정실 인사와 정경유착으로 방콕 중산층들이 떠나간 자리를 태국 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뭉친 지방 농민들이 채우게 됩니다. 이러한 탁신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그리고 강력한 신진 세력으로 기존의 태국 체제를 위협하는 농민층 및 이싼족에 대한 반감은 새로운 정치적 동맹을 만들어냈습니다. 원래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를 놓고 싸우던 엘리트층과 방콕 중산층들은 손을 잡기로 한 것입니다. 그걸 상징하는 사건이 2006년의 쿠데타와 그에 대한 방콕 중산층의 강한 지지였습니다. 자신들이 투표로 선출한 지도자를 또 다시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빼앗기게 되었다는 친탁신파의 분노가 들끓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탁신의 복귀를 촉구하는 시위가 계속해서 벌어졌고, 2010년에는 '방콕 전투'라 할 수 있는 유혈 사태가 동반된 충돌까지 빚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탁신을 지지하는 이들은 붉은 색 옷을 입고 '레드셔츠'를 결성하고, 탁신을 반대하는 이들은 노란 색 옷을 입으며 '옐로셔츠'를 결성했죠.


레드셔츠와 옐로셔츠의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졌습니다. 2011년,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총리가 되면서 레드셔츠가 승리하나 싶었습니다. 광범위한 태국 대중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동원되면서 이들의 승리는 사실 민주주의 하에서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엘리트층은 탁신 세력의 집권은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는 길이자 자신들의 핵심적 이익을 붕괴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승복할 생각이 절대 없었습니다. 2014년, 쁘라윳 짠오차가 이끄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하고 옐로셔츠로 대변되는 방콕 중산층들이 다시 군부를 지지하면서 태국에는 새로운 군부 시대가 열렸습니다. 쿠데타 이후 형식상 여전히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군부 엘리트들이 전면에 나서서 대중의 정치 참여를 제약하는 권위주의로 급격하게 기울게 됩니다.

작년 여름에 촉발되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시위들은 그러한 정치적 갈등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쿠데타 이래로 6-7년, 탁신의 집권 이래로 이미 20년이나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정치적 구도에 의미심장한 변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레드셔츠와 옐로셔츠 할 것 없이 모두의 존경을 받던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이 사망하고 엽색행각과 기행으로 유명한 10대 국왕인 마하 와찔랄롱꼰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것이고, 둘은 태국의 Z세대들(1995년생 이후 출생자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변화는 현재의 반정부 세력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왕실은 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로, '하이쏘'들의 구심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권위는 탁신마저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망나니 국왕으로 왕실의 신뢰도가 급격하게 추락하게 되자 태국 반정부 시위는 이제 단순히 민주주의를 실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왕실을 없애고 공화정으로 가자는 급진적인 주장으로도 옮겨 붙는 모양새입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태국 Z세대의 특징이라 한다면, 탁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아닐까 합니다. 물론 탁신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핵심적인 이슈입니다. 하지만 청년층 상당수는 탁신 집권기를 기억 못하는 세대기도 합니다. 따라서 탁신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군부 권위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심리는 약합니다. 대신에 왕실과 결탁하고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군부에 대한 원초적 반감이 굉장히 팽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콕 중산층 안에서도 옐로셔츠를 싫어하고 태국 군부에 반감을 표하는 청년층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탁신을 벗어남으로써 청년층 안에서는 확장성을 꾀할 수 있던 것이죠.

(관련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도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https://slownews.kr/77979)

이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은 바로 작년 태국 시위 현장에서 케이팝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dCS04xIe72I&t=90s

2016년 이화여대 시위 덕분에 세계적 혁명가의 위상을 점하게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따라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케이팝은 이미 그 특유의 전투적 팬덤 문화로 정치적 동원과 여론 확산을 가르치는 훈련장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군부 정권에 반대하는 미얀마와 태국 청년층들은 케이팝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면서 국경을 넘는 정치적 운동을 추구하기도 하죠.

올해 3월 미얀마의 쿠데타 이후 벌어진 시위에서는 그 무렵 동시에 발매되었던 블랙핑크 로제의 솔로 On the Ground가 자주 울려퍼졌습니다. 열렬한 블랙핑크의 팬이자 로제의 솔로곡 발매날을 손 꼽아 기다리던 학생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발매 하루 전 날에 총격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의 시위대들은 Lin Htat라는 학생을 추모하며 그의 빈소에서 On the Ground를 계속해서 재생했습니다.

그토록 듣고자 했던 로제의 솔로곡을 빈소에 들려주는 모습

요컨대 동남아시아 권위주의 국가에서 반발하기 시작한 청년층의 문화에서 케이팝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케이팝을 통해 그들은 정치적 군중으로 훈련되고, 온라인 공간에서 여론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기술을 배우며, 고도의 산업 경제와 민주주의 정치, 화려한 소비 문화를 갖춘 한국을 자신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 간주하고 있습니다(미얀마에서는 시위대가 승리하면 남한, 군부가 승리하면 북한이라는 구호가 돌았다고도 하죠).

다시 하이키로 돌아옵시다. 하이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멤버는 시탈라(Sitala Wongkrachang)라는 멤버입니다. 이 시탈라가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태국 멤버입니다.
시탈라 웡크라창


한국까지 와서 아이돌 하겠다는 태국인들이 흔한 것도 아니고, 이미 다른 태국 출신 아이돌과 친분을 나타내는 사진들을 여러 장 남기기도 했었죠. 아이들의 민니나 CLC의 쏜과 같이 말이죠. 그런데 이게 의미심장한 게,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태국 아이돌은, 대부분 방콕 상류층, 즉 하이쏘 출신, 최소 중산층 출신이란 말이죠.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시탈라 또한 마찬가지로 '집 잘 사는 금수저 애' 정도라고 예상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시탈라의 아버지인 사란유 웡크라창(Sarunyoo Wongkrachang)이 2006년, 2008년, 2014년 등 반탁신 옐로셔츠 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핵심 인사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태국의 유명 배우 출신으로 정치 활동에 상당히 많이 참여했고, 나중에는 민주주의인민연대(PAD)의 주요 리더로 올라섰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탈라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기도 했었는데요.

현재 왕실과 군부에 염증이 나 있는 태국의 케이팝 팬덤 입장에서 이는 매우 불쾌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트위터에 들어가서 시탈라를 치면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하는 태국 케이팝 팬덤의 트윗이 쏟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케이팝 종주국 국민들인 한국인들 이해하기 편하라고 "전두환 독재 세력의 딸이 아이돌을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친절히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말이죠.
사실 이러한 팬덤의 아티스트에 대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쟁점으로 걸고 가하는 압박은 케이팝 및 한국 연예계 생태계에서는 아주 익숙한 것입니다. 태국의 케이팝 팬덤도 마찬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태국의 권위주의 정권과 대립하는 광범위한 군중 행동의 일환으로서 말입니다. 앞으로도 케이팝 무대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태국의 아이돌들은 자신의 가족이 군부 정권과 유착,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할 압박을 받을 듯 합니다. 하지만, 케이팝 아이돌을 하라고 한국에 연습생을 보낼 정도의 태국의 '좀 사는 집'이라면 거의 대부분 군부를 지지하거나 혹은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향후 어떤 딜레마가 발생할지도 대충 그려집니다. 거기에, 시탈라를 통해 시작된 흐름이 이미 데뷔한 아이돌들에게로 향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정체성의 전장'인 케이팝은 이미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케이팝은 아주 한국적인 현상이지만, 흥미롭게도 아주 보편적이고 제국적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케이팝의 문화와 양식은, 수용하는 국가의 특성에 따라 변용되기도 하고, 또 케이팝이 수용국 사회의 몇몇 단면들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리사를 통해서 동남아시아 사회에 흐르는 화교/동북아와 주류민족/동남아의 긴장을 읽을 수 있었고, 시탈라를 통해서 태국 군부 정권과 그에 반감을 품은 청년층들의 갈등 구도가 드러납니다. 이제는 세계를 알아야 케이팝을 이해할 수 있고, 케이팝을 이해해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은 시탈라의 데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태국 케이팝 팬덤의 '캔슬' 요구는 정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과한 연좌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