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의 고통 섞인 비명을 '법치'의 명분으로 공격하는 행위 역시 청년 정치인이 할 법한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러한 행위가 정말로 법과 질서를 침해할지라도, 그것이 '청년 정치인'의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의 핵심 논지는 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전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이동민님이 위 인용문에서 밝힌 '청년정치론'의 배경 사건이 된 연세대 청소노동자 시위에 관련해 제 입장부터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현재까지 몇 가지 보도기사를 통해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 의견을 말하자면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의 요구내용(시급 440원 인상 및 샤워실 설치)는 노동자로서 주장할 수 있는 요구이고 이를 주장하는 수단과 방법에서도 이렇다 할 문제는 없습니다 (폭력행사가 있었다거나 소음 데시벨이 65db을 많이 상회하는 아주 시끄러운 소음 발생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바꿔 말해 시급인상 및 복리후생환경개선이라는 목적 그리고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시위라는 단체행동을 취한 것, 양자 모두 우리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한국의 각종) 노동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행사 범위에서 이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이번에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연세대 학생 이동수씨 및 이동수씨의 고소를 지지한 국힘 소속 관악구의원 최인호씨 입장에 반대합니다. 제가 볼 땐 딱히 뭘 잘못한 게 없는 사람들(연대 청소노동자들)한테 비난과 공격을 퍼붓고 있는 편이 이동수씨와 구의원인 최인호씨에요.
그러나 "설령 (약자의 고통 섞인 비명인) 행위가 정말로 법과 질서를 침해할지라도" 청년 정치인의 우선 순위는 법과 질서의 유지보단 약자의 옹호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동수씨와 최인호씨를 반대한다면 이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동수씨 및 최인호씨를 반대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것과 사회 정의는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를 상대...
"약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공감은 위험할 수 있다" 는 주제로 쓰인 글 중에서는 가장 조리있고 짜임새 있게 쓰인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글의 요지에는 상당 부분은 동의하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몹시 잘 쓰인 글이라고 생각했기에 추천 드립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이동민님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경우나 조건일지라도 불문하고 청년 정치인은 사회적 약자가 고통 섞인 비영을 지른다면 설령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수위의 심대한 법과 질서에 대한 침해일지라도 닥치고 무조건 사회적 약자를 편들어야한다"라는 극단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어도 청년 정치인이라면) 가급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의 정치를 해야한다"라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읽으셨습니다. 이 글의 핵심 포인트가 이거예요. 덧붙이자면, 얼룩소에서 제가 주로 쓰는 분야도 아닌 이 분야의 글을 쓴 이유는 신문 기사를 읽고 들었던, 일부 생물학적 나이만 청년인 '청년 정치인'들의 행보에 대한 경계심, 문제의식 등입니다.
무비판적인 공감이나 수용은 잘못된 것이지요. 이 부분은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글 쓰는 데 긴 준비, 퇴고 시간이 조금은 부족하다 보니, 자칫 의사 전달이 왜곡될 부분이 생겼네요. 아울러 기회가 되면 그 같은 무비판적인 공감이나 수용, 도덕 등의 강요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글도 써 보고 싶어요. 이 부분은 개인사와도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거든요~
아울러 선생님이 언급하신 ‘공감’과 제가 쓴 ‘공감’은 같은 단어지만 다른 취지, 의미, 뉘앙스로 쓰였죠. 이런 부분을 오해 등이 안 가도록 규정하는 일을 ‘조작적 정의’라고 하는데,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생각도 나고, 글을 쓰며 조작적 정의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드네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이동민님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경우나 조건일지라도 불문하고 청년 정치인은 사회적 약자가 고통 섞인 비영을 지른다면 설령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수위의 심대한 법과 질서에 대한 침해일지라도 닥치고 무조건 사회적 약자를 편들어야한다"라는 극단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어도 청년 정치인이라면) 가급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의 정치를 해야한다"라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읽으셨습니다. 이 글의 핵심 포인트가 이거예요. 덧붙이자면, 얼룩소에서 제가 주로 쓰는 분야도 아닌 이 분야의 글을 쓴 이유는 신문 기사를 읽고 들었던, 일부 생물학적 나이만 청년인 '청년 정치인'들의 행보에 대한 경계심, 문제의식 등입니다.
무비판적인 공감이나 수용은 잘못된 것이지요. 이 부분은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글 쓰는 데 긴 준비, 퇴고 시간이 조금은 부족하다 보니, 자칫 의사 전달이 왜곡될 부분이 생겼네요. 아울러 기회가 되면 그 같은 무비판적인 공감이나 수용, 도덕 등의 강요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글도 써 보고 싶어요. 이 부분은 개인사와도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거든요~
아울러 선생님이 언급하신 ‘공감’과 제가 쓴 ‘공감’은 같은 단어지만 다른 취지, 의미, 뉘앙스로 쓰였죠. 이런 부분을 오해 등이 안 가도록 규정하는 일을 ‘조작적 정의’라고 하는데,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생각도 나고, 글을 쓰며 조작적 정의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