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휩쓴 물리·화학상, 유독 물리가 화제였던 이유 [2024 노벨 과학상]

윤신영
윤신영 인증된 계정 · alookso 에디터
2024/10/11
역대 과학상 수상자 653명 분석 결과
물리학상은 타 분야 학자 수상 드물어
화학상은 융합, 생리의학상은 세분화 특징
인공 신경망은 전체 네트워크 구조를 사용하여 정보를 처리한다. 물리학의 도구를 사용하여 강력한 머신 러닝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만든 두 과학자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두 수상자 중 한 명이 정통 물리학자가 아닌 컴퓨터 과학자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는데, 이는 물리학 분야 기존 수상자의 배경을 보면 조금 이해가 간다. 데이터를 이용해 각 분야별 수상자 배경을 분석, 비교해봤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올해 노벨상은 화제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10일 저녁(한국 시간) 발표된 문학상 수상 결과다. 한국에 역대 두 번째 노벨상이자 최초의 노벨상이 소설가 한강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이전 사흘간 발표된 과학상도 그에 못지않게 많은 화제를 뿌렸다. 첫날 발표된 생리의학상은 기초과학 분야로 큰 이견이 없었지만,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인공지능(AI) 분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특히 물리학상의 경우, 평소 물리학자로 분류되지 않던 AI와 머신러닝, 인공신경망의 대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포함되면서 여러 화제를 낳았다. 일부 학자들은 신경망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인공신경망의 거동을 재현하기 위해 물리학 방법론을 사용했으므로 물리학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수식으로 그것을 표현, 해석하는 작업은 모두 물리학의 영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그래도 물리학 배경이 없는 컴퓨터 과학자가 수상자 목록에 포함된 것은 다소 과감한 결정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세계의 온라인 물리학자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수상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를 반영하듯 여러 재치있는 이미지(밈)도 유행했다. 엑스 게시물 캡처
물론 수상 자격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물리라는 분야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번 발표 이전까지는 머신러닝이나 AI를 물리학의 분야로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을 계기로 머신러닝도 물리학의 성과로 보고 물리학의 영역으로 취급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벨상을 발표하는 노벨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의식한 듯 발표 당시부터 "인공신경망이 물리학의 방법론을 사용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발표 뒤에는 홈페이지에서 “머신러닝을 위한 모델이 물리학 기반의 방정식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는가?”는 설문조사를 게시하기도 했는데, 1만 3000명 이상이 참여한 11일 13시 30분 기준으로, “몰랐다”가 55%로 더 많았다. 적어도 대중에게는 낯선 사실임이 틀림없다.
노벨 물리학상 발표 이후 홈페이지(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에서는 머신러닝이 물리에서 나온 공식에 기반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묻는 설문이 있었다. 과반 이상이 잘 몰랐다고 답했다.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


AI 돌풍은 화학상에서도 이어졌다. 컴퓨터를 이용한 단백질 디자인의 길을 연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 시리즈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대표와 존 점퍼 디렉터가 포함됐다. 이 가운데 딥마인드의 수상자 둘은 화학자가 아닌 AI 연구자 출신 기업인과 계산 생물학자다. 물리학상의 힌튼과 비슷하게 화학자가 아닌 상태에서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물리학상에 비해서는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이 적었다(오히려 한 해에 두 분야에서 동시에 AI가 수상한 데에 놀라는 사람은 많았다). 단백질 구조 예측 및 설계는 생명과학 및 생화학 분야의 난제 중 하나였고, 쉽게 구조를 풀거나 설계할 경우 신약을 개발할 때 획기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해결책을 기다려온 학자들이 많았다. AI는 여기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왔고, 베이커 그룹과 딥마인드는 그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불과 수년 사이에 단백질 구조 예측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줄여 연구 시간을 단축했다는 과학자들이 늘었다. 이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신약도 나오고 있고, 이를 위한 기업도 탄생하고 있다. 

단백질 구조 AI는 화학 또는 생리의학 분야의 중요한 문제를 풀 뛰어난 도구였으며, 인류를 이롭게 할 과학적 진보를 위한 도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에도 인류에 이로운 중요한 기술을 제공한 기초연구에 화학상을 수상한 사례가 여럿 있었기에, 이번 결정에 큰 이견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수상은 시간 문제고, 화학상일지 생리의학상일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이런 차이 때문에 화제 양상이 달랐던 것은 아니다. 노벨상의 두 분야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분야 분위기도 꽤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지만, 위키백과 상 그를 소개하는 문구는 "컴퓨터 과학자, AI 연구자, 기업인, 체스 선수"다. 화학의 오랜 난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온 기술을 개발했지만 화학자는 아니다. 위키피디아


전통적인 '분야' 구분 흐려진다...수상자 653명 배경 분석

사실 노벨상에서 분야가 혼란을 일으킨 지는 꽤 됐다. 특히 생명과학이 화학의 언어로 생명을 해석하기 시작한 이후 화학과 생리의학 분야는 거의 매년 혼란을 일으킨다. 신약 개발에 공헌한 화학 연구는 생리의학상일까, 화학상일까. 단백질 구조를 밝힌 연구, 유전체를 해독하거나 직접 수정하는 기술, 세포 내 단백질의 구조를 밝힌 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두 분야에 걸쳐 있었다. 재료과학 연구도 물리와 화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분야 별로 이 같은 경향의 양상은 다르다. 어느 분야는 다른 분야 전문가의 수상에 더 열려 있고, 어느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차이 때문에 노벨상 수상 시 수상자의 전공 배경에 대한 강조에 차이가 생긴다. 

이를 확인하고자 역대 노벨 과학상 수상자 653명의 분야를 살펴봤다. 수상자의 배경을 정리한 하나의 데이터는 없기에, 각 수상자의 영문 위키백과의 페이지를 모두 수집한 뒤 정제해, 각 페이지에서 그 과학자를 언급한 분류를 추출해 분류했다. 한 명의 과학자가 여러 분야에 걸쳐 있기도 하고, “의사이자 바이러스학자”,  “AI 연구자이자 기업인이자 체스 선수 ” 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기에 주요 명칭 별로 해당하는 연도별 수상자를 살펴봤다.


 

1. 물리: 응집성 강한 분야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분야 별로 분류했다. 위키백과의 서술을 수집해 분석했다. 그래픽 윤신영

📌물리학상: 인터랙티브로 보기

먼저 물리학상 수상자 227명을 살폈다. 수상자를 설명한 절대다수(89%, 203명)의 수식어는 그냥 “물리학자”다. 물리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인물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에는 거의 대부분 그냥 ‘물리학자’라고만 서술한다. 극히 일부가 ‘이론 물리학자’나 ‘핵 물리학자’, ‘입자 물리학자’라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지만, 이에 해당하는 학자임에도 서술이 빠진 경우가 더 많아 따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딱 하나, 따로 분류한 것은 천체물리학자다. 11명이 천체물리학자로 언급됐다. 천체물리학자 역시 물리학자로 보고 계산하면 노벨 물리학상의 94%가 물리학자에게 간 셈이다.

전자공학자 등 엔지니어로 분류된 경우도 11명(5%), 발명가와 수학자로 불린 사람도 각각 6명(3%) 있었다. 천문학자는 5명, 화학자로 분류된 사람은 3명으로 매우 적었다. 그 외에 특이하게 기상 및 기후학자(2021년 기후물리 분야 수상자)가 두 명이 있었고(이 때에도 화제였다), 유일하게 컴퓨터 과학자가 한 명 있는데 그게 올해 수상자 힌튼 교수다.

전반적으로 물리학상은 물리학자를 중심으로 수여됐음을 알 수 있다. 반도체 등 지금은 공학의 영역에 속하는 분야를 개척한 연구도 다수 있지만, 모두 물리학자가 활약했다.

*1줄 요약: 물리학자의 피엔 물리학의 피가 흐른다(아님). 힌튼이 낯설어 보일 수밖에.
 

2. 화학: 정체성의 위기 또는 친화력

역대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분야 별로 분류했다. 위키백과의 서술을 수집해 분석했다. 그래픽 윤신영

📌화학상: 인터랙티브로 보기 

화학 분야 수상자도 기본적으로는 ‘화학자’라는 언급이 가장 많았다. 197명 중 166명(84%)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학자라는 명칭이 빠져 있는 수상자가 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만 보면, 83명 중 58명만이 화학자로 기록돼 있다. 70%다. 

대신 다른 분야 전문가로 불리는 수상자가 늘었다. 수상자 중 생화학자로 불리는 사람의 비율은 20세기 초중반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총 43명, 22%).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아예 물리학자(41명, 21%)나 생물학자(14명, 7%)의 참여도 늘었다. 생물학자는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물리학자는 노벨상 초창기부터 존재해오다(마리 퀴리가 물리학자로서 두 상을 받은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부쩍 수가 늘었다. 1990년대 이후에만 16명이다. 

발명가나 수학자, 기상학자, 정치가 등이 특이한 경우고, 유일하게 ‘AI 연구자’가 한 명 있는데 바로 허사비스다. 존 점퍼는 ‘계산 생물학자’로 분류돼, 생물학자에 포함됐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화학자 수는 다소 줄고 다른 분야 연구자로 분류된 사람이 화학상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통화학을 제외하면 정체성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화학이 친화력을 발휘해 다른 분야와의 교류를 적극 늘리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1줄 요약: 화학은 분야에도 화학적 변화를 가하는 중


3. 생리의학상: ‘내 이름은 빨강’

역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분야 별로 분류했다. 위키백과의 서술을 수집해 분석했다. 그래픽 윤신영

📌생리학상: 인터랙티브로 보기 

물리학상과 반대다. 가장 다양하면서도 가장 색이 뚜렷하다. 그리고 가장 역동적이다.

우선 다양성. 불리는 이름이 무척 많다. 물리학자는 입자를 연구하든 반도체를 연구하든 빛을 연구하든 다 물리학자로 불린다. 세부 분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XX 물리학자’다. 그래서인지 위키백과의 항목도 물리학자로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다르다.  세부 분과 별로 모두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동물학자, 생리학자, 유전학자, 분자생물학자, 면역학자, 미생물학자 등으로 기록돼 있고, 약학자, 신경과학자도 있다. 의사도 소아과의사, 내과의사, 외과의사, 안과의사를 따로 분류하고, 기초의학 연구자인 혈액학자도 언급돼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사람과 동식물, 미생물의 생명 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연구 방법론도 여럿 공유한다. 그런 점에서는 부르는 이름은 각기 달라도 학문의 '색'은 하나이며, 가장 뚜렷하다. 

그래서 최대한 세부 의학 분야를 한 데 묶고, 기초 생명과학이나 의과학도 몇몇을 묶어 분류한 결과가 위 그래프다.

보면 역동성도 보인다. 초반에는 생명과학자가 아닌 의사, 의학자(40명)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생리학자(26명)라는,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사람도 다수 수상했다. 전체적으로 229명 중 66명(29%)이 의사와 생리학자였다. 이 분야 이름이 ‘생리의학상’인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분야 수상자가 상대적으로 줄었고, 기초연구자의 수상이 늘었다. 특히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면역학자의 수상이 늘었다(총 79명, 34%). 주로 1950년대 이후에 수상했는데, DNA의 구조 발견 이후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생화학(41명, 18%)도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분야다. 20세기 초중반부터는 약학(13명, 6%)이 꾸준히 수상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로는 물리학자(생물물리학자, 5%), 1970년대 이후로는 새롭게 신경과학자(7%)의 수상도 늘었다. 

생리의학상 수상 분야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오랜 분야인 의학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화학이라는 언어와 다양한 기술을 채택하면서 복잡하게 세분화되고 있다. 이름이 생리의학일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수상작을 보면 결국 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연구로 모이므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이름은 다 달라도, 가장 색이 뚜렷하니까.

*1줄 요약: 종분화의 영향인지 세분화된 언어를 지닌 분야. 하지만 모두 생명의 언어 아래 모임. 달라 보이지만 여기도 피는 하나.



미국과 한국에서 기자상을 수상한 과학전문기자입니다. 과학잡지·일간지의 과학담당과 편집장을 거쳤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인류의 기원(공저)' 등을 썼고 '스마트 브레비티' '화석맨' '왜 맛있을까' '사소한 것들의 과학' '빌트' 등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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