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의 사내들
2024/09/26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대목에 다다라서 자세를 바로잡고 앉게 되었다.
“주먹도끼의 손잡이에는 그 도끼로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의 손바닥 체온이 남아 있다. 그는 이 손바닥으로 짐승을 때려잡고 아내를 애무했을 터이다.”(<연필로 쓰기>(김훈, 2019), 312쪽)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석기 시대 유적인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 박물관에 가서 진열된 주먹도끼를 보면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다. 글쓴이는 이어서 생각나는 사내들을 나열한다.
“짐승의 머리를 치다가 일격이 빗나가서 짐승에게 먹힌 사내들, 하루종일 허탕 치고서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내들, 비가 오고 또 눈이 와서 나가지 못하고 움막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내들을 생각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온통 사내들로 꽉 찬 세상은 글쓴이 혼자 머릿속에서 그려낸 세상이 아니다. 고인류학자도 아닌, 고고학자도 아닌 당대 최고의 작가가 주먹도끼를 보면서 사내들의 세상을 상상했다고 해서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먹도끼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장면일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은 주먹도끼를 보면서 아무 상상도 하지 않겠지만.)
주먹도끼는 사냥도구라고 알려졌다. 주먹도끼는 주먹만 한 돌로 만들어진, 주먹같이 생긴 선사시대 석기다. 도끼라는 이름은 우람한 몸통을 가지고 나무를 베거나 장작을 패거나 집채만 한 짐승을 맨손으로 상대하면서 휘두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매우 ‘사내다운’ 장면이다. 주먹도끼보다 작은 석기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창 촉으로 쓰였다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도구는 모두 사냥, 짐승을 잡는 데에 쓰인다고 알았다. 그리고 짐승을 잡는 일은 인류 진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살아있는 짐승을 잡기 위해 필요한 지능과 체력, 도구의 발명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