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편식, 김어준의 '인텐션' – 내가 본 세월호 10년 5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4/04/24
증거의 편식,  김어준의 '인텐션'  – 내가 본 세월호 10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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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년을 맞아 안산 세월호 기억저장소에 다녀왔다. 단원고등학교 출신 희생자들이 몸담았던 교실이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돼 있었다. 책상마다 적힌 이름들, 낙서들, 뒷벽의 게시판들, 수학여행을 환호하며 적어 놓은 달력 등 하나 하나가 눈두덩을 찔러 왔다. 참으로 슬픈 죽음들. 정녕 기막힌 사연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화가 치솟아 오는 황망한 참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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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슬픔 앞에 덤덤할 사람은 드물다. 10년이 지나도 그 해 4월 16일 뭘 하고 있었는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는 열에 여덟 아홉은 기억한다. (내 주위는 그렇더라.) 그만큼 충격적인 날이였다. 생방송에 가까운 화면으로 수백 명이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을 봤으니 그 트라우마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부모들이야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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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저장소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이것저것 설명해 주신 분은 세월호 희생자 중 하나인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셨다. 낯이 익은 분이었다. 몇 년 전 크게 화제가 됐던 보도와 얽혀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고 임경빈군은 참사 당일 오후에 바다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이때 ‘생명 반응’이 있었는데 헬기로 긴급수송하지 않고, 헬기는 해경 간부들이 타고 갔으며, 배로 이송되면서 밤 늦게나 병원에 도착했고 그래서 사망했다는 참사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사실상 ‘살인’에 가까운 ‘이송 지연’이었기에 여론이 들끓었고 당시 검찰총장 윤석열은 당장 특별수사단을 꾸려 수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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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이가 무혐의였다. 현지까지 내려가 의사 포함 당시 관계자들과 인터뷰했던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에 따르면 애초에 조사위원회 발표가 억지였다. 유일한 ‘생명 반응’의 근거는 산소포화도 수치였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수치였고, 발견된 뒤 맥박이 뛰거나 감각 반응을 보이거나 한 적도 없고, 이미 신체는 경직돼 있었다. 사망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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