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미
2023/12/23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교수를 이름으로 부르는 일도 스트레스였다. 지도교수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말했다. “나를 밀퍼드라고 불러요.” Call me Milford.
이런 이야기는 들은 바 있었다. 미국에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담을 허물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1:1의 관계를 맺는 지극히 멋지고 민주적인 관습이 있다는 이야기. 동방예의지국, 군사부일체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승에게 이름을 부르다니. 대학원 과정에서 만났던 교수들은 대학원생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나면서 나도 익숙해졌다. 교수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했지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교수만은 끝까지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거부했고 그는 내게 교수님이라고 불리기를 거부했다. 의외로 이름을 부를 필요는 없었다. 이야기를 건넬 때는 그냥 “익스큐즈 미” 혹은 “하이”로 족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앞에서 눈 맞추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나 자신이 교수가 되어보니 알 수 있었다. 학생에게 선뜻 이름으로 부르라는 초대는 그렇게 민주적이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 그 뒤의 권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에게 이름을 부르라는 초대를 할 수 있는 교수는 이미 교수로서 권력을 누리고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백인-남성이었다. 이들은 학생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고,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강의실에 나타나도 되었다. 물론 아무런 슬리퍼는 아니었다. 버켄스탁이어야 했다.
백인 남성이 아닌 사람들이 교수가 된 지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들은 교수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찢어진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