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2)
2023/05/06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시각적 묘사
현재까지 남겨진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들의 모습을 근거로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을 일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각상들은 대체로 클레오파트라를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전형적인 백인일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식이죠. 심지어는 전문 연구자들 가운데도 꽤 단정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런 판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론 제가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에 동의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흑인설‘을 부정하기 위해서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의 모습을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일단 무엇보다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고 있는 시각 자료들의 양은 의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로마 스타일로 클레오파트라가 묘사된 조각상은 현재까지 6점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각상들이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판단은 대부분 다 추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현재 독일 베를린의 구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클레오파트라의 두상은 로마 근교의 아피아 가도 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이 상이 묘사하고 있는 여성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실의 여성들이 주로 하던 ‘멜론형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클레오파트라의 두상이라고 추정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추정의 근거들은 아주 탄탄하지는 않습니다. ‘멜론형 머리 스타일’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탄생하기 이전에 그리스에서 이미 등장을 했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도 아르시노에 2세, 베네리케 2세 등도 이 머리 스타일을 한 것으로 묘사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기원전 46-44년 사이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를 방문하는 동안에는 로마의 여성들도 이 스타일을 모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만큼, 베를린 구 박물관의 석상은 클레오...
이집트 고고학자입니다. 역사변동과 의례경관, 그리고 행위수행자들의 경험과 성찰에 관심이 많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 가치판단이야 말로 현대인류문명의 최대 업적이라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1편을 보고서 트위터에 신경질적으로 글을 읽은 후기를 남겼는데 그걸 보시고서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다면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싶습니다.
후에 나온 2편과 3편 굉장히 잘 읽었고 매우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항상 평온하시고 건강하세요.
전 오히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에 한 표를 둡니다 ㅎㅎ 다른 분들 말씀처럼 다큐멘터리라서 흑인배우를 쓴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쉽게 설명을 풀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결국 그 영상도 영화였다면 아무도 반발하지않았겠지만 ᆢ 다큐멘터리 라서 다들 문제삼는거겠죠
클레오파트라의 인종 정체성도 정체성인데 이번 사건의 제일 큰 문제점은 "역사를 프로파간다적 목적으로 소비한다."가 아닐까, 싶어요. 클레오파트라 다큐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흑인이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타 국가 역사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습니다 :( 고대 이집트 역사가 재밌고 매력있다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소비해도 되나..싶어요.
역사는 현재/미래의 열쇠인 만큼 소중하고 중요한데 은근슬쩍 프로파간다적으로 소비하는 사례가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ㅜㅜ 이건 클레오파트라 다큐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20세기때 그로인한 폐해를 전세계적으로 뼈져리게 경험하였음에도 21세기 2023년에도 여전히 성행한다는게 참 소름돋아요.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이 다큐멘터리가 역사왜곡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을 단정조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큐멘터리의 작품론은 역사학이랑은 다른 것이고, 주제를 위한 작가주의는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교육용 매체이기에 학술적인 선이 있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꼭 다수설을 따를 필요는 없고, 소수설이라도 개연성이 납득 가능하다면 충분히 다룰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안 가설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희박하다' 수준이라면, 당연히 큰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단정조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우리 해석은 이렇다' 수준으로 제작진이 겸손하게 말했다면 훨씬 상황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제작진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Cleopatra was eight generations away from these Ptolemaic ancestors, making the chance of her being white somewhat unlikely. After 300 years, surely, we can safely say Cleopatra was Egyptian.
클레오파트라는 이러한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있고, 이는 그녀가 백인(white)이었을 가능성을 있음직하지 않게 한다. 300년 차이 때문에 확실하게 우리는 그녀가 이집트인이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감독 Tina Gharavi
https://variety.com/2023/tv/global/queen-cleopatra-black-netflix-egypt-1235590708/
「While shooting, I became the target of a huge online hate campaign. Egyptians accused me of 'blackwashing' and 'stealing' their history. ... No amount of reasoning or reminders that Arab invasions had not yet happened in Cleopatra’s age seemed to stem the tide of ridiculous comments.
촬영 동안, 나는 거대한 혐오 캠페인의 타겟이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내가 '블랙워싱'을 했고 그들 역사를 '도둑질' 했다며 비판했다. ... 클레오파트라 시대엔 아직 아랍인들의 침략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줘도 우스운 코멘트들이 계속되는 거 같다」
-감독 Tina Gharavi, 같은 출처
곧, 여기서 드러나는 제작진의 생각은,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없지는 않으니 이 학설에 기반해서 다큐를 만들어봤습니다'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단정조로 고대 이집트인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단정조로 흑인이다. 현대 이집트인들 아랍인인데 왜 자꾸 태클이냐.'라는 매우 편협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입니다.
더군다나 흑인설이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는 건 철저하게 클레오파트라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췄을 때입니다. 본문에서 설명해주셨듯이, 고대 이집트인이라는 '집단'의 피부색 이야기로 넘어가면, 단호하게 흑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별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 이야기를 하자면, 흑인의 존재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을 '흑인 집단'으로 묘사한 것은 어떻게 보아도 역사왜곡이라는 단호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다양성을 과장하는 것은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반드시 현지의 인종 비례를 정확히 반영해서 피부색을 설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통계를 보면 백인이 x%인데 왜 이 작품에서는 y%냐"라고 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태클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반영한다면서 미국이라는 집단을 동아시아계 집단으로 묘사한다면, 여기에 대한 반박을 '백인우월주의'라고 비판한다면, 그건 선을 심하게 넘은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며, 그렇기에 역사왜곡이란 말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때로 가서 보고오고 싶네옄ㅋㅋㅋㅋ 궁금하다 궁금해
좋은 글이네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생각해 보면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글로 남기는 것은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실'(fact)에 입각해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왕권을 정당화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전 활동에 가까웠다던데, 역사적 기록뿐만 아니라 조각이나 회화 같은 매체에서도 사진을 찍듯이 피사체의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쉽게 떠올리기 힘드네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이 다큐멘터리가 역사왜곡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을 단정조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큐멘터리의 작품론은 역사학이랑은 다른 것이고, 주제를 위한 작가주의는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교육용 매체이기에 학술적인 선이 있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꼭 다수설을 따를 필요는 없고, 소수설이라도 개연성이 납득 가능하다면 충분히 다룰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안 가설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희박하다' 수준이라면, 당연히 큰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단정조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우리 해석은 이렇다' 수준으로 제작진이 겸손하게 말했다면 훨씬 상황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제작진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Cleopatra was eight generations away from these Ptolemaic ancestors, making the chance of her being white somewhat unlikely. After 300 years, surely, we can safely say Cleopatra was Egyptian.
클레오파트라는 이러한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있고, 이는 그녀가 백인(white)이었을 가능성을 있음직하지 않게 한다. 300년 차이 때문에 확실하게 우리는 그녀가 이집트인이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감독 Tina Gharavi
https://variety.com/2023/tv/global/queen-cleopatra-black-netflix-egypt-1235590708/
「While shooting, I became the target of a huge online hate campaign. Egyptians accused me of 'blackwashing' and 'stealing' their history. ... No amount of reasoning or reminders that Arab invasions had not yet happened in Cleopatra’s age seemed to stem the tide of ridiculous comments.
촬영 동안, 나는 거대한 혐오 캠페인의 타겟이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내가 '블랙워싱'을 했고 그들 역사를 '도둑질' 했다며 비판했다. ... 클레오파트라 시대엔 아직 아랍인들의 침략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줘도 우스운 코멘트들이 계속되는 거 같다」
-감독 Tina Gharavi, 같은 출처
곧, 여기서 드러나는 제작진의 생각은,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없지는 않으니 이 학설에 기반해서 다큐를 만들어봤습니다'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단정조로 고대 이집트인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단정조로 흑인이다. 현대 이집트인들 아랍인인데 왜 자꾸 태클이냐.'라는 매우 편협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입니다.
더군다나 흑인설이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는 건 철저하게 클레오파트라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췄을 때입니다. 본문에서 설명해주셨듯이, 고대 이집트인이라는 '집단'의 피부색 이야기로 넘어가면, 단호하게 흑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별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 이야기를 하자면, 흑인의 존재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을 '흑인 집단'으로 묘사한 것은 어떻게 보아도 역사왜곡이라는 단호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다양성을 과장하는 것은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반드시 현지의 인종 비례를 정확히 반영해서 피부색을 설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통계를 보면 백인이 x%인데 왜 이 작품에서는 y%냐"라고 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태클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반영한다면서 미국이라는 집단을 동아시아계 집단으로 묘사한다면, 여기에 대한 반박을 '백인우월주의'라고 비판한다면, 그건 선을 심하게 넘은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며, 그렇기에 역사왜곡이란 말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인종 정체성도 정체성인데 이번 사건의 제일 큰 문제점은 "역사를 프로파간다적 목적으로 소비한다."가 아닐까, 싶어요. 클레오파트라 다큐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흑인이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타 국가 역사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습니다 :( 고대 이집트 역사가 재밌고 매력있다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소비해도 되나..싶어요.
역사는 현재/미래의 열쇠인 만큼 소중하고 중요한데 은근슬쩍 프로파간다적으로 소비하는 사례가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ㅜㅜ 이건 클레오파트라 다큐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20세기때 그로인한 폐해를 전세계적으로 뼈져리게 경험하였음에도 21세기 2023년에도 여전히 성행한다는게 참 소름돋아요.
그때로 가서 보고오고 싶네옄ㅋㅋㅋㅋ 궁금하다 궁금해
생각해 보면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글로 남기는 것은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실'(fact)에 입각해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왕권을 정당화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전 활동에 가까웠다던데, 역사적 기록뿐만 아니라 조각이나 회화 같은 매체에서도 사진을 찍듯이 피사체의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쉽게 떠올리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