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부동산 개발회사

허남설
허남설 인증된 계정 · 집과 동네, 땅에 관심 많은 기자
2023/10/02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 73-225번지 코끼리빌라는 3층짜리 주택이다. 말이 3층이지, '반지하'라고 부르는 층이 한 개 더 있으므로 실은 4층이다. 1980년대 정부는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지하층의 주택 사용을 허용했고, 그 시기 땅을 가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코끼리빌라 같은 주택을 지었다. 송정동에 걸음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송정동의 시간은 거기에서 딱 멈췄다. 그래서 낡고, 긁히고, 부서졌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본 것만 같은 정겨움도 묻어나는 동네다.

지금 이 코끼리빌라의 소유주는 유명 사설학원의 후계자다. 이 동네 사람도 아니고, 부동산 개발업자도 아니다. 달랑 집 한 채 가진 노인이 생계형 임대업이나 할 법한 동네에서 그런 사람이 대체 왜 흔하디 흔한 빌라를 샀을까. 어떤 큰 그림이 있을지 헤아릴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가 이 코끼리빌라를 단돈 '1유로(€)'에 3년 동안 한 건축가에게 빌려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건축가는 이 빌라를 감싼 붉은 벽돌 위에 '1EURO PROJECT'란 글씨를 선명하게 내걸었다.
ⓒ허남설
건축가, 최성욱 로칼 퓨처스(Lokaal Futures) 대표는 경복궁 서측 동네, 서촌에서 살았고 무역과 간척지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공부했다. 서촌에서는 한옥이 아파트가 되길 바라는 주민들을 보며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바탕으로 쉽게 쉽게 혁신에 접근하는 문화를 목격했다. 그런 고민과 충격을 안고 살 때쯤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진 '1유로 프로젝트'를 만났다.

1유로 프로젝트는 용도를 딱히 찾기 어려워 방치된 공간을 말 그대로 1유로에 빌려 쓰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은 정하기 나름이다. 최성욱 대표는 네덜란드에서 100년 된 정수장이 호텔과 유기농 텃밭·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명소로, 마약과 매춘이 들끓는 슬럼가가 건축가와 예술가가 활발하게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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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을 배우고 건축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기자가 되었습니다.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글항아리•2023)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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