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 나이에 집착하게 된 쓸쓸한 이유
조선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란 분이 계셨었습니다.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 나이차이가 무려 32년.
당시 퇴계선생은 58세였고, 고봉 선생은 26세의 패기 만만한 젊은이었다고 하고요.
두 분은 무려 13년간 10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유교 대해서 논하는
그 유명한 4단 7정 논쟁을 펼치셨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13년간 두 분이 서로에게 끝까지 서로 경어를 쓰며 예의를 지키셨다는 겁니다.
퇴계도 절대로 고봉을 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성과 한음은 5살의 나이차에도 죽마고우였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너무 잘 알고 있지요.
연암 박지원 선생은 백탑파라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무려 17살!
조선시대는 성년이냐 어린아이냐의 구분만 있었을 뿐, 성년이 된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는 ...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 나이차이가 무려 32년.
당시 퇴계선생은 58세였고, 고봉 선생은 26세의 패기 만만한 젊은이었다고 하고요.
두 분은 무려 13년간 10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유교 대해서 논하는
그 유명한 4단 7정 논쟁을 펼치셨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13년간 두 분이 서로에게 끝까지 서로 경어를 쓰며 예의를 지키셨다는 겁니다.
퇴계도 절대로 고봉을 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성과 한음은 5살의 나이차에도 죽마고우였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너무 잘 알고 있지요.
연암 박지원 선생은 백탑파라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무려 17살!
조선시대는 성년이냐 어린아이냐의 구분만 있었을 뿐, 성년이 된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