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노경호 · 연구자
2023/04/15
3. 기독교적 대속과 원죄, 사랑과 용서
개인적으로 전우원 씨가 겪었을 실존적인 괴로움에 대해 동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위로를 보내고 싶다. 나는 그의 (실은 불가능한 것이라 내가 주장하는) "사과"에 담긴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그의 행보에 감시를 하듯이 눈을 부릅뜨고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와는 다른 시각에서이다. 사과와 용서가 '있었다'는 것만큼이나 '어떤' 사과와 '어떤' 용서가 있었는지, '이' 사과와 '이' 용서가 어떤 사건을 다루고 처리하기에 알맞은 것인지는 사유의 대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그가 보여준 사과와 연출된(?) 장면들 속에서 그의 사과가 '어떤' 사과인지를 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전우원 씨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고, 그의 언행을 보건대 또 그렇기도 하다. "나는 추악한 죄인이다"라는 기자회견의 첫 마디는 원죄론, 즉 저지르지 않은 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자의식과 회심의 경험이 녹여진 표현으로 들렸다. 그리고 문재학 열사의 묘비를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닦았던 장면에서는 정확히 신약성경의 두 장면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바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군중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의 나귀가 지나가는 길 위에 깔면서 그를 환영했다는 장면, 그리고 예수가 어떤 집에 머물게 되었을 때 그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발랐던 한 여인의 장면이었다. 특별히 JTBC 인터뷰에서 전우원 씨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닦아드리고 싶었다"라는 언급을 한 것으로 보아, 아마 두 번째 성경 장면이 부지불식 간에 혹은 의도적으로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향유가 값비싸고 가장 좋은 것이라는 암시들은 당시 예수 곁에 있던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훗날 예수를 배신할 제자가 "그걸 팔아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낫지 않냐"고 마음에도 없이 비아냥대자, 예수가 대놓고 일침을 놓는 것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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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합니다; 번역: <정치철학사>(공역, 도서출판길, 2021),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신문 <뉴스토마토> 시론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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